소식 + 공지 + 방명록 외 기타 주접대기

<연재>

지금은 신작 연재를 쉬고 있습니다. :)

안개 도시 모음곡 (프로젝트 ILN 독자 참여) / 예스24 E연재
마과학온천함선비행담 베스타 ~라신느 꿈의 저편~ / 예스24 E연재

<출간>

2016.  6. 인어의 바다 / 그래출판 (TL, 19세 미만 구독불가)
2016.  2. 안드로이드여도 괜찮아 / 온우주
2010. 12. 전자책 단편선 뿌와뿌와 벌레 / 피우리 ('뿌와뿌와 벌레'외 12종 수록)
2010.  5. 아빠의 우주여행 / 황금가지 ('아빠의 우주여행' 수록)
2009.  8. 한국환상문학단편선2 / 웅진 시작 ('파랑새' 수록) / 절판

<ORPG>

성관마 13시대 캠페인 'Dice & Devotee'

<땅주인 음지식물>

* 별채 - 여기 (취미생활 외)
* 텃밭 - 츄베랄's RPG 풀때기밭 (RPG 전용)

<기타>

PSN : Chuverall
Battle.net : 츄베랄#3236

[박앵귀/이바x치즈루]단잠(熟睡) - 2 글과 그림

[박앵귀/이바x치즈루]단잠(熟睡) - 1

2.

이바의 얼굴을 보지 못 한지 이틀째였다. 
나흘 일정으로 하코다테 외부의 시찰 계획이 잡혔다. 겨우내 얼어붙은 통행로를 점검하고 군량 등의 물자 수송에 차질이 없도록 조처하는 작업이었다. 이바를 포함한 유격대가 맡은 일로, 공개적으로는 이바의 급사인 치즈루도 처음에는 동행하기로 하였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오릉곽에 남게 됐다. 얼마 전 근처에서 일어난 눈사태로 인해 갑자기 부상자가 들이닥치며 간병에 손이 모자라게 된 탓이었다. 히지카타의 부탁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부상자들이 눈에 밟혀 치즈루는 자발적으로 남기로 결정했다. 이바는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치즈루가 괜찮다며 잘 달래어 유격대 일원들과 그를 떠나보냈다.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급하고 위중한 환자들이 안정되자 치즈루에게도 여유가 찾아왔다. 교대해주기로 한 병사에게 나머지 일을 맡기고 치즈루가 병동을 나왔다. 어제 저녁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그칠 기미 없이 온통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었다.
고작 한, 두 달 보았을 뿐인데 눈에 싫증이 났다. 높게 쌓인 눈을 보자 절로 바깥에 나간 이바 생각이 났다. 눈을 치우고 길을 트는 작업은 굉장히 고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유키무라 선배.”

소마가 병동 현관 앞에서 오도카니 서있는 치즈루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추운데 왜 거기 서 계세요. 오늘은 당직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어. 소마 군은?”
“저도 겨우 사고의 사후 지시가 끝나서 돌아가려던 참입니다.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눈이 제법 쌓여서 위험하니까요.”

치즈루는 소마의 배려를 사양하지 않았다. 병동에서 숙소가 있는 건물까지는 중정을 가로질러 꽤 걸어야 했다. 사람이 오가는 길목의 눈은 치워져 있었지만, 날이 어두웠기 때문에 소마의 말대로 위험했다. 소마가 내민 손에 의지해 두 사람은 걸음을 내딛었다.

“눈 언제까지 내릴까?”

치즈루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소마는 질문이라 생각했는지 성실하게 답했다.

“아마도 내일 오전까지는 내릴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알아?”
“부대 내에 에조치 토박이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험난한 기후와 맞닿아 살았더니 날씨를 보는 감각이 탁월하다고 합니다. 이번 변두리 통행로 시찰도 조만간 폭설이 올 가능성이 높으니 미리 점검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시행하게 됐습니다.”
“나간 사람들은 괜찮겠지?”

소마가 치즈루를 돌아보았다. 치즈루는 오릉곽 너머의 새카만 저편을 수심 깊은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마가 고소를 지었다.

“그럼요. 큰 문제가 생길 일이었다면 히지카타 씨는 반드시 선배를 이바 씨와 함께 보냈을 겁니다.”

치즈루는 이런 주변 사람들의 배려가 낯설기도, 부끄럽기도 했다. 오릉곽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즈루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신선조 둔소 때처럼 존재를 숨길 필요도 없었기에, 히지카타도 굳이 치즈루를 남자라고 두둔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았다. 이바와 친한 유격대의 사람들은 하물며 ‘대장의 소중한 사람’이라며 소중히 여겨주었다. 
이바와 치즈루가 에조치에 온 이후로 서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치즈루가 문득 생각나 물었다.

“혹시 나 모두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어?”
“예?”
“소마 군, 일부러 병동까지 온 거지?”
“그…… 예. 하지만 결코 걱정을 끼친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정말로 어두워지면 위험하기도 하고.”

이 정직한 청년은 거짓말에 서툴렀다. 치즈루는 배려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미안해하는 소마의 마음을 헤아려 이야기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에도에 돌아와서 이바 씨 댁에서 지낸 이후로 이렇게 떨어져본 적은-”

처음이었다.

우뚝. 치즈루의 걸음이 멈췄다. 소마가 의아해하며 돌아보자, 치즈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치즈루는 공황에 젖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몸을 웅크렸다.

“선배? 괜찮습니까?”

이바가 없다.
몇 달간, 곁에 있는 게 당연했던 사람이, 없다. 언제나 치즈루의 불안을 감싸 안아주던 사람이 없었다. 잠깐 떨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치즈루는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공포와 두려움과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감각에 그만 정신을 잃어버릴 뻔 했다.
다가와 부축해주려는 소마의 팔을 뿌리치고 치즈루는 내달렸다. 소마가 치즈루를 불렀지만 귀에 닿지 않았다. 무겁게 떨어지는 눈도, 차가운 공기도, 치즈루의 마음속까지 침투해 날카로운 손톱마냥 사납게 긁어댔다. 아픔에 치즈루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왜, 왜 이렇게까지, 왜?’

이바와 함께하기 전에는 이런 두려움이 있는 줄 몰랐다.
이바와 함께한 이후에도 이런 두려움이 있는 줄 몰랐다.
그리고 이바가 없자, 생각해 본 적 없는 두려움이 고개를 내밀었다. 
치즈루의 안에서 미처 소화되지 못했던 어두운 마음이었다. 이제까지 잘 견뎌냈던 감정들이 지금은 수습할 수 없이 터져 나와 엉망진창이었다. 이바가 죽을 위기에 처해 눈을 뜨지 못했던 때에도 꿋꿋하게 버텼는데, 왜 이제 와서 이런 상태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치즈루는 살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는 동물처럼 이바의 방으로 갔다. 옷장에서 그의 겉옷 한 벌을 꺼냈고, 옷깃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죽여 흐느껴 울었다. 이성적인 생각이 불가능했다. 외롭고, 슬프고, 고독하고, 무섭다는 감정만이 선명해, 옷에 남은 이바의 향취에 달라붙어 감정의 격류를 토해낼 뿐이었다.

치즈루는 책상과 벽 사이 구석에 쪼그려 앉아 이바의 옷만 꼭 끌어안은 채 굳어있었다. 밖에서 노크를 하며 치즈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이성적인 자신이 질책했지만, 그보다도 지치고 힘들어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 더 앞섰다.
대답이 없자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이 치즈루의 어깨에 닿았다. 귀찮고 싫었다. 반사적으로 뿌리쳤다.
누군가가 말을 건넸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곁에 있던 인기척이 멀어졌다. 문이 닫히고, 치즈루는 다시 혼자되어 모든 감정을 내려놓았다. 끌어안은 이바의 옷자락만이 기댈 수 있는 전부였다.

깜박 잠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뜨자 창 밖에서 빛이 비쳐들고 있었다. 아침이 밝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바 씨가 없어.’

간밤에 다 쏟아냈다고 생각한 눈물이 다시 흘러넘쳤다. 치즈루는 눈을 감고 빛을 시야에서 차단했다. 아무리 밝다한들 정말로 원하는 사람이 곁에 없는데, 아무리 눈부신 빛이라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오래전 느꼈던 감정의 지문을 더듬게 했다. 치즈루의 기억 속, 아주 먼 어제, 떠나가던 하치로 오빠를 바라보던 때의 감정을. 또 경에 있을 때의 감정들도 떠오르게 했다. 처음 신선조 둔소에 잡혀왔을 때의 일, 자유를 빼앗기고 오랜 시간 머무르며 겪었던 일들, 그 때 애써 외면했던 상처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끌려나왔다.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굳어버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쯤, 목마름과 허기에 눈이 뜨였다. 눈이 정말 그쳤는지 온화한 빛이 방 안에 가득했다. 고개를 들자 어지러움이 들어 비틀거렸다. 바닥에 쓰러진다 생각했는데, 단단한 지지대가 받쳐주었다.

“치즈루.”

다른 누군가가 아닌, 고작 며칠이었는데 몇 달은 못 본 것처럼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이바 씨……”

갈라진 목소리가 났다. 치즈루가 아픈 눈을 깜박이며 올려다보자, 머리카락이고 옷자락이고 모두 흐트러지고 땀에 젖은 모습의 이바가 보였다. 치즈루가 이바의 목에 팔을 감았다.
이바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치즈루를 꼭 안아주었다. 아침 일찍 오릉곽에서 오오토리로부터 급편을 받았을 땐 놀랐다. 치즈루의 상태가 아무래도 이상하니 먼저 돌아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바는 사색이 돼서 뒷일을 모토야마에게 맡기고 돌아왔다. 그리고 방에 틀어박힌 치즈루의 모습을 보자, 사정을 헤아리지 않아도 무엇을 해야 할지 이해했다.

치즈루는 열이 났다. 이바가 곁에 있어 안심한 탓에 무리의 반동이 닥쳤다. 이바는 저녁 늦게까지 치즈루를 간병했다. 히지카타에게는 환자들에게서 감기가 옮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치즈루의 상태를 처음 보러 왔던 오오토리는 그 뿐만이 아님을 눈치 챘지만, 굳이 캐물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잘 보듬어주라는 묘한 어조의 한마디를 얹었다.
겨우 열이 내려 치즈루가 정신을 차렸을 땐 밤이 깊었다. 이바를 기다리던 시간이 꿈만 같았다. 이바를 부르려 했지만 목이 막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바는 치즈루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물을 가져왔다. 치즈루가 직접 마시겠다고 손을 뻗었지만 제지당했다.
이바가 물을 마시고, 입술을 겹쳐 옮겨주었다. 두 번을 그렇게 옮겨주고서, 세 번째는 좀 더 오래 입술이 머물렀다. 이마가 가볍게 닿고 따듯한 숨결이 섞였다. 말 못할 안도감에 다시 또 치즈루의 눈물샘이 파열하고 만다. 이바가 손가락으로 눈물을 조심스레 쓸어주었다.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
“괜찮아요.”
“이, 이바 씨 때문이에요-”
“네. 알아요.”

이바는 치즈루가 걸어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쉽게 열어버리고 말았다. 삭히고만 있었던 어두운 감정이 가득한 마음을 달래고, 상냥한 목소리와 말로 속삭여 조금씩 조금씩 풀어내,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슬퍼하지 않아도, 고독하지 않아도 된다며 열어 젖혔다.

“어떡해요, 저 어떻게 하죠? 이, 이대로 아무 것도 견디지 못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요. 그저 지금은 혼란스러워서 그래요. 약해진 게 아니에요, 치즈루. 걱정 말아요.”

이바의 부재를 통해 깨달았다. 지금껏 너무 많이 참아왔음을. 미련하게도 마음의 그릇이 삐거덕거릴 만큼 아픔을 삼켜왔음을.
……이바가 그런 자신을 언제나 걱정해 왔음을.

“곁에 있어주세요.”
“네.”
“이바 씨, 어디에도 가지 말아요.”
“전 언제나 당신의 곁에 있어요. 당신을 지킬게요.”

두서없는 치즈루의 이야기를 이바는 끝까지 들어주었다. 헤어짐도, 좋아하는 사람들의 죽음도, 마주했던 폭력들도. 실은 너무나도 힘들고 무서웠다고. 이제야 당신이 나를 그토록 걱정했던 이유를 알겠다고. 내가 상처 입을 바에야, 당신이 찢겨 죽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하던 당신의 말을, 염려를 이제야 알겠노라고.
이야기가 어디에서 끊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치즈루는 이바의 품에서 잠들었고, 이바도 그런 치즈루를 품어 안고 새벽 어둠 속에 의식을 내던졌다. 두 사람은 깊은 밤 온기를 나누어 가졌다.
그것이 서로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 양.

2018년 생일선물 위시리스트

올해도 위시리스트를 발표(?) 합니다...

이바치즈 연성(글/그림)
<안드로이드여도 괜찮아> or <여성작가 SF단편선> 구매하시고 인증

희움의 압화가방 (예약)
먹을 것(다 잘먹으니 간식류, 기프티콘 모두 OK)
차 or 커피
책 상품권

예쁜 우산 or 튼튼한 우산꽂이
PS4 듀얼쇼크
일본 가서 즐겁게 놀다오라고 용돈 보태주기(20일 출국)

감사합니다...
리스트는 언제나 선물을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한 것이지 따로 준비하시는 분들은 괘념치 마십시오 ㅋㅋ

[박앵귀/이바x치즈루]단잠(熟睡) - 1 글과 그림

- 꽃의 장 메이지 2년 3월 시점

단잠(熟睡)



1.

그는 ‘오늘은 어쩐지 피가 술렁이는 것 같다’라고 지나가듯 말했다. 치즈루는 그 말을 허투루 넘겨듣지 않았다.

이르게 시작하는 아침, 업무로 바쁜 오후, 전선에서 활동을 금제한 이바는 치즈루와 함께 다른 방법으로 모두를 도왔다. 병사들의 훈련과 오릉곽으로 몰려드는 서류의 정리, 유격대 대장의 보조와 민간 지원 등, 칼로 싸우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은 도처에 쌓여있었다.
나찰이 된 후 낮 시간 활동이 이바의 몸에 주는 부담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에도에 있을 때보다도 몸을 사리지 않고 지냈다. 그것이 자신의 책임인 양, 함께 싸울 수 없음에 대한 속죄인 양. 치즈루는 이바의 마음을 헤아렸다.

“하치로. 오늘은 이만 됐다.”

군량 증축 관련으로 서류 작성을 보조하던 이바에게 히지카타가 말했다. 불그스름한 석양의 색깔이 방 안을 물들일 무렵이었다. 이바가 고개를 갸웃하며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거리를 돌아보았다. 히지카타는 미간을 찡그리고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거리며 축객했다.

“며칠 째 내내 낮 시간에 일하고 있잖아. 나찰이 된 주제에 그렇게 움직이다간 금방 골로 갈 거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짓도 적당히 하라고. 일찌감치 들어가 좀 쉬도록 해. 내일은 늦게 나와도 되니까.”
“그렇게까지 무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끄러워. 나찰이 된 부하들에 대해선 지긋지긋할 만큼 잘 알고 있다고. 그리고 너, 생각해야 할 사람을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

이바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깜박이다가 아, 하고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치즈루가 걱정하고 있었군요.”
“그래. 걱정을 얼굴에서 감출 생각을 못 할 정도로. 그러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
“알겠습니다.”

이바는 순순히 서류를 내려놓고 깍듯하게 히지카타에게 인사한 뒤 집무실을 나왔다. 치즈루는 언제나 자신을 배려해주었다. 그 배려에 마음을 맡긴 주제에 이번에는 정도가 조금 지나쳤던 모양이다. 그간의 무리를 인식하고 긴장을 풀자 뒤늦게 피로가 몰려들었다. 팔 다리가 무겁고 눈가가 욱신거렸다. 몸 안쪽 어딘가부터 기분 나쁜 감각이 울렁거렸다.

‘위험한데.’

좋지 않은 전조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헐적으로 느꼈던 피의 술렁거림이 이제는 확실히 느껴질 만큼 커졌다. 이바는 지금의 상태가 무엇을 불러일으킬지 깨닫고 서둘러 방으로 돌아갔다.
비틀거리며 몸을 죄는 옷과 크라바트를 벗고 침대에 기절하듯 쓰러졌다. 곧 식은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술렁거림이 요동으로 바뀌었다. 이바는 시트를 쥐고, 허억, 숨을 삼켰다. 나찰의 피가 살가죽을 찢고 튀어나올 것처럼 날뛰었다. 어마어마한 허기와 갈증에 뇌까지 타버릴 것 같았다. 고통을 참으려 몸을 웅크렸다. 행여나 이성을 잃고 방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비틀어 안았다.
피에 대한 갈망에 미친 짐승이나 다름없다. 몇 번이나 겪은 발작이었지만, 도무지 이 감각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서 빨리 피를 취하라고, 사람들 베고 찢어 그 피를 빨며 향락에 취하라고, 더 이상 괴롭지 말라고 미쳐버린 본능이 끝없이 이성을 공격했다.

“이바 씨!”

고통을 참느라 방에 누가 들어온 줄도 몰랐다. 어느새 다가온 치즈루가 이바의 어깨에 손을 댔다. 달콤한 살 냄새가 났다. 하얀 피부 아래에 숨겨진 감미로운 피의 향기에 이성이 송두리째 날아갈 것 같았다.

“어서 제 피를 마시세요.”
“치즈루……”

엉망진창으로 앗아버리고픈 욕망을 억누르고, 이바가 팔을 뻗어 치즈루를 쓰러트렸다. 뒤에서 덮듯이 끌어안아, 옷깃을 끌어내려 드러난 하얀 목덜미에 상처를 냈다. 흘러내리는 선혈에 차가운 입술을 가져다 대자, 치즈루 몸이 살며시 떨렸다. 이바의 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치즈루의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마시는 일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어도 여전히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차차 발작이 잦아들었다. 하얗게 샜던 머리카락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안광이 얼핏 비치던 붉은 눈도 맑은 날의 하늘빛으로 돌아왔다. 미안해요, 치즈루. 한숨처럼 속삭인 이바가 치즈루를 풀어주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치즈루는 엎드린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치즈루? 왜 그래요?”

이바가 사색이 돼서 치즈루의 상태를 살폈다. 목덜미의 상처는 이미 사라졌다. 혹시 지나치게 피를 빨아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이 아닌지 덜컥 두려웠다.

“읏, 아,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잠시만……”
치즈루가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바가 걱정에 질려 치즈루의 등을 다독였다.

“괜찮습니까?”
“죄송해요. 그……”
“제가 무리를 시켰군요.”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치즈루가 튕겨나듯 몸을 일으켜 이바를 올려다보았다. 귀까지 새빨개진 얼굴로 항변하듯이 뭔가를 말하려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니……까……”
“치즈루, 왜 그렇게-”
“부, 부끄러워서……! 왠지는, 저도 잘, 모르겠……”

치즈루는 왠지 오늘쯤, 이바에게 발작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바가 아침에 불쑥 한 말이 전조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내내 걱정을 지우지 못했다. 아까도 히지카타의 일을 돕는 이바의 상태를 보러 갔다가 쉬러 돌려보냈다기에 서둘러 찾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바가 발작을 혼자 견디고 있었다. 놀랐고, 속상했다. 계속 곁에 있어주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좀 더 자신의 감을 믿었어야 했다.
언제나처럼 피를 나눠주었을 뿐인데, 이바의 포옹도 목덜미에 닿는 입술과 혀의 감촉도 분명 몇 번이나 느꼈던 것인데. 치즈루는 그 감각이 전과 달리 너무나 간지럽고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예전에는 어떻게 이런 감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싫은 기분을 느끼게 해서 미안해요.”

이바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치즈루의 상태를 이해한 것 같았다.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경고가 치즈루의 뇌리를 스쳤다. 치즈루가 황급히 이바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그의 품에 묻었다.

“싫지 않아요.”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상한 말을 한다고 생각할까봐 초조했다.

“너무 이바 씨가 잘 느껴져서, 부끄러워졌어요.”
“네…… 네?!”
“모, 몰라요!”

치즈루가 이바를 밀치고 도망치려했지만, 이바가 반사적으로 힘을 주어 끌어안는 바람에 실패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제법 오랜 시간 정지해 있었다. 서로의 빠른 고동소리와, 따듯한 체온 덕분에 마음속에 채워져 있던 어떤 문이 스르르 열렸다.

석양이 지고 어스름이 내려, 불빛 없는 방안에 부드러운 연보라색이 번졌다. 두 사람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마주보았다. 눈빛과 호흡에 사랑스러움이 가득해 빨려들 듯 가까워졌다. 코끝이 닿고, 이마가 닿고, 이바의 입술이 치즈루의 볼에 닿았다가 그녀의 숨결을 쫓아 입술에 닿았다. 말로 수습할 수 없던 기분이 신기하게도, 이렇게 입술을 맞대고 있으면 모두 이해되고 진정됐다.
잠시 뒤 입술이 살며시 떨어졌다.

“같이 잘래요?”

이바가 물었다. 치즈루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종종 함께 잠들곤 했다. 누구 한 사람이 불안하거나 힘들 때, 혹은 둘 모두 그러할 때, 함께 차가운 밤을 보내는 일은 크나큰 위로였다. 서로를 안고 잠들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다. 불안도, 슬픔도, 기약 없는 미래도, 죽음의 예감도 그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이바 씨, 역시 너무 무리했어요.”

치즈루가 이바의 머리를 품어 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걱정 끼칠 생각은 아니었어요. 조심하겠습니다.”

영원할 것 같은 겨울이 끝을 고하고 있었다. 이바는 치즈루에게 봄이 되면 일어날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조만간 평온했던 나날에도 작별을 고해야할 때가 온다고. 눈이 녹고 한파가 가시면 신정부군은 에조치로 본격적인 정벌을 시작한다. 에조치의 혹독한 겨울보다도 더 가혹한 전쟁이 또다시 시작된다. 날이 풀려 햇살에 봄기운이 스며들며, 안도감과 그보다 큰 불안의 향기를 두 사람은 매일같이 느끼고 있었다. 이바가 부쩍 무리하게 된 것도 불안에 대한 반동이었으리라.
이바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치즈루의 열린 셔츠 틈으로 따듯한 숨결이 들어와 살에 닿았다.

“……아.”

약하게 떨며 반응하는 몸짓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바가 치즈루의 앞섶을 열고 쇄골에 입 맞추었다. 이바의 머리를 안은 치즈루의 팔이 긴장했다가 풀리길 반복했다.

“이바 씨……”
“응, 치즈루.”

가느다랗게 서로의 이름을 속삭이며, 서로의 목과 어깨와 등을 만지고 쓰다듬었다. 숨결과 입술이 얽히고 온기를 나눈다. 잠겨드는 것처럼 나른함을 동반한 몸짓이었다. 옷깃이 흘러내려 살과 살이 장벽 없이 닿는 느낌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요람 같았다.
그렇게 서로를 인지한다. 사랑한다. 함께 잠든다.
다다를 곳은 다른 꿈이더라도, 현실에서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안고서.

1 2 3 4 5 6 7 8 9 10 다음


통계 위젯 (화이트)

1917
168
405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