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 엘 모로의 휴일 - 2 └- 불새, 불꽃의 연인

2.

엘 모로의 데 모로 광장은 솔레타 모로 성과 산 피에스타 광장을 잇는 사거리에 위치한 장소에 있었다. 산 피에스타 광장이 엘 모로의 중심부의 심장이라면 데 모로 광장은 ‘귀부인의 목’이라 불릴 정도로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았다. 중앙의 분수대는 ‘노래하는 뮤즈와 물의 정령’이라는 테마의 대리석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는데, 보다체 출신의 유명한 조각가 파스칼 베스탄지가 조각한 것으로 섬세함과 정밀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광장 바닥도 10명의 조각가들이 한 땀 한 땀 각자의 예술세계를 표현한 조각판으로 조화되어 있었다. 시민들을 모이게 만드는 큰 판은 산 피에스타, 연인들이 애호하는 곳은 데 모로였다.
데 모로 광장에 도착한 레이나는 길거리 음식을 파는 청년에게 다가가 타코를 하나 샀다. 매운 소스 잔---뜩 뿌려주세요. 과장되게 말하자 청년은 웃으며 빨간 소스를 듬뿍 뿌려주었다. 뒤늦게 당도한 리카르도에게 다가가 내민다.

“매운 소스 잔뜩이다아.”

놀려줄 생각이었는데, 예상 외로 리카르도는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씩 웃으며 받았다.

“나 매운 거 잘 먹어.”

어라. 이게 아닌데. 재미없게. 예상이 빗나갔음을 알고 꽁 한다. 리카르도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내가 곤란해 하면 재미있지?”
“응!”
“즉답하지 맛.”
“처음 만났을 때 부터어어--- 우아아!”

레이나의 머리를 꾸욱 누르고, 허리를 바싹 끌어안았다. 매운 소스가 잔뜩 뿌려진 타코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잘 먹었다. 광장 바깥쪽을 천천히 걷는다.

“에두아르도?”
“응. 사실 그냥 상태나 묻고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바짝 날 서서 심통 부리니까. 귀엽잖아.”
“보통 그럴 땐 귀염성 없다고 하는 거 아니냐고. 먹어. 맛있어.”
“으응, 그런가? 아, 응.”

말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소스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한 입 베어 물었다가 걸음을 멈추고 발을 동동 굴렀다. 간신히 씹어 삼켰지만 입술과 혀 안쪽 점막이 타는 듯 따가웠다. 눈에 눈물이 핑 돌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리카르도가 웃음을 터트렸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모습이란!

“우, 웃지마으아!”

등을 투닥투닥 때린다. 아야야. 알았어. 기다려봐. 가까운 가게에서 소다수를 사 와 건넸다. 빨갛게 부푼 입술로는 도무지 마시기 곤란해 했다. 리카르도는 소다수를 한 모금 머금고, 키스로 건네주었다. 어때, 괜찮아? 조금 더. 아직 아파. 몇 번씩 반복해 입술로 흘려 넣는다. 매운 기미가 사라지자 약간 달아오른 얼굴로 헤헷, 웃는다. 리카르도는 레이나의 코 끝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며 웃었다. 이제 됐지요? 레이나는 보닛 리본을 만지작대며 쑥스러움을 감춘 목소리로 말했다.

“응- 그러니까. 고양이 같았어.”
“뭐야 그게.”
“아무리 성질이 나쁘고 포악해도 고양이는 귀엽잖아, 그런 거.”
“성질이 나쁘고 포악해도, 에 방점이 찍혀 있는 거야?”
“아냐, 그렇진 않아. 진짜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레이나는 한사코 아니라고 부정했다. 석연찮았지만 그러려니 넘겼다. 긍정을 받아봤자 놀림 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럼 당신은 어땠어? 역시 재수 없는 녀석?”

레이나가 리카르도의 팔을 끌어당겼다. 분수대에 걸터앉고, 리카르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떨떠름한 목소리로 답했다.

“기분 나쁘게 하는 남자?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데 고마워할 기분이 안 나는 남자?”
“......우와, 그거 심하다. 재수 없는 거 보다 더 심한데.”

레이나는 막연히 리카르도와 대면하던 에두아르도를 떠올렸다. 맨들맨들하고 유들해서 재수 없다는 소리는 종종 들었지만 기분 나쁘다는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꽤 충격 받은 표정을 짓자 리카르도는 차마 말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말한다는 티를 내며 우물쭈물 이어 말했다.

“근데 그럼 뭐 해.”

그런 남자한테 고백했는데. 자존심 문제 상 뒷말은 끝까지 삼킨다. 레이나는 동그란 눈으로 리카르도를 올려다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허긴, 내가 좀 많이 매력적이지.”

가슴을 당당히 펴며 에두아르도의 목소리 톤으로 말하고, 깔깔거린다. 하여간. 리카르도가 피식 웃으며 분수대 물을 살짝 튀겼다.

“차가워! 에잇.”

물방울이 튀자 레이나도 질 세랴 손가락으로 몇 방울 튀어 보냈다. 어어? 이 여자 보게.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한웅큼 뿌린다. 얼굴과 가슴께가 젖자, 레이나는 봐 주지 않겠다는 듯 두 손으로 떠서 리카르도의 얼굴에 정확히 뿌렸다.

“해보시겠다구요? 응?”
“......”

미간을 씰룩이며 억지웃음을 짓다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래, 이번에야 말로 무릎 꿇려 앉히고 총까지 발로 걷어차인 걸 설욕해주지!”

레이나는 이미 신발까지 벗어던지고 분수대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치맛자락을 무릎께에서 대충 틀어 묶고, 역시나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리카르도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덤벼봐! 감히 물의 마녀에게 물로 승부를 하시겠다구요!”
“흥! 다시는 덤벼보라고 못하도록 해 주지, 마녀님!”

리카르도가 일부로 크게 발장구 치며 분수대로 들어왔다. 그 여파로 한번 푹 젖어버린 레이나는 입술 끝을 바들거리며 웃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화창한 늦여름의 낮에, 광장의 분수대에서 물장구를 치는 사랑스러운 연인의 모습에 지나가던 시민들이 웃고 환호성을 터트렸다. 아가씨, 지지마! 거기 오빠 봐 주지 말아요!
푹 젖어버린 리카르도는 두고 보자며 분수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겨, 깊은 곳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앗! 반칙이야! 언제까지 버틸까 두고보자아-”

레이나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단층 바로 앞에서 기다렸다. 제까짓, 1분이나 버티면 오래 버티겠지. 폐병 환자가 숨을 참아봤자 얼마나 참겠어. 자신만만하게 코웃음 치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역시나 레이나의 발아래까지 헤엄쳐 와 발목을 콱 쥐었다. 꺅. 깜짝 놀라 내려다보자 손가락으로 발등에 글자를 썼다. [ 숨 막혀 ]

"아이, 참, 바보!"

정말 고집은! 레이나가 깊은 곳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부글거리며 물거품이 일고, 손을 뻗어 리카르도의 얼굴을 더듬었다. 리카르도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레이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치이. 뾰로통하게 보고 있자, 리카르도는 정말 숨이 막혀오는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네. 픽 웃고 입술을 마주 댔다. 깊게, 깊게.
하얀 물거품이 피부를 간질인다. 물의 마녀의 축복을 담은 키스에 리카르도는 숨결이 트이는 신비한 감각에 젖어, 레이나에게 더욱 깊게 얽혀들었다. 혀끝을 녹이듯이 맞대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상냥하게 젖어든다. 물은 레이나의 따스한 내부와 같은 온도로 리카르도를 감싸 안았다.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어. 네 안에서. 너의 사랑으로 충만한 이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인은 길고 긴 키스를 나누며 한동안 물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물 위로 솟아오르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이보게, 괜찮나? 무척 오래 잠수해 있었던 것 같은데. 리카르도와 레이나는 그제야 자신들이 한 일을 생각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무마했다. 괜찮아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하하하. 일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허전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리카르도는 얼른 손을 뻗어 잠수하면서 잃어버린 안경을 찾았다. 다행히 안경은 발치에 반쯤 부서져 잡혔다. 그러나 뒤집어 쓰고 있던 가발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어, 위원장......”
“사람 잘못 보셨어요!!”

어디선가 위원장 소리가 들리자 리카르도는 화들짝 놀라며 대뜸 소리쳤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사람들이 머리에 전기라도 맞은 사람들처럼 어안이 벙벙해진 틈을 타, 레이나가 질책하며 리카르도의 소매를 끌었다.

“바, 바보! 누가 그러래! 튀어!”

사람들이 리카르도의 이름을 부르려는 찰나, 두 사람은 벗어둔 신발을 양 손에 쥔 채로 냅다 분수대를 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에서 위원장님! 리카르도 페란! 연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오후 햇살을 받은 엘 모로 도시의 바닥은 모래처럼 거칠고, 따듯했다. 맨 발로 하염없는 빛의 길을 앞서 달리던 레이나는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피식, 피식 터져나오는 웃음을 리카르도도 막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바람처럼 내달리고 도시가 떠나갈 만큼 웃었다.
까슬한 바닥이 푸릇한 잔디로 바뀌었다. 도시 한켠에 위치한 공원까지 다다랐다. 산책로를 벗어나 되는대로 달리니, 관리를 위해 출입 금지 푯말이 붙어있는 공원 가장 깊숙한 곳 까지 들어와 버렸다.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해가 질 때 까지만 있다 나가기로 하고 멈춰 섰다.
물과 땀이 뒤섞여 얼굴을 타고 흘렀다. 숨을 헉헉대며 고르고, 아직 수습이 되지 않는 웃음을 연신 터트렸다. 맥박이 빨라져 심장이 쿵쿵대는 소리가 귀를 시끄럽게 울렸다. 기분 좋아. 재미있었어. 그치, 정말.
레이나는 치맛자락을 꾹꾹 눌러서 물기를 짜고 상의를 벗어 탈탈 털었다. 리카르도도 조끼와 타이를 벗어 구두와 함께 볕에 펼쳐놓았다.

“아, 보닛 없어졌다.”
“누가 챙겨뒀다가 위원장 애인 보닛이라고 이자 붙여서 팔지도 몰라.”
“그거 좋다. 나 나중에 오늘 입었던 옷이랑 전부 다 팔까?”
“......”
“......농담이야, 농담.”

심각한 표정이 되려는 남자를 제지하고, 레이나는 기분 좋게 대자로 드러누웠다. 리카르도가 곁에 앉아 레이나의 이마와 잔머리를 쓸어주자, 기분이 좋은지 눈을 감고 목을 울렸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나른하게 내렸다. 레이나의 젖은 하얀 피부에 부서지는 태양 빛을 감회롭게 바라본다. 햇빛 좋다, 그치? 느긋한 목소리로 묻자 레이나는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처럼 표정을 찡그리며 답했다. 응- 따듯해. 리카르도가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맑은 파랑색, 파도거품 같은 구름이 짧은 꼬리를 드리우며 흘러가고 있었다.

“이렇게 하늘 보는 거 되게 오랜만인 것 같다.”
“나도 그래. 눈 앞이 너무 복잡해서, 이렇게 맑은 하늘 보는 거 정말 오랜만이야.”
“언제쯤 여유가 생길까.”
“으응- 머잖아.”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손가락이 걷히고, 리카르도가 레이나의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빛의 온기가 사라지자 레이나가 반짝 눈을 뜨고 올려다보았다. 더없이 상냥한 표정으로 레이나를 바라보는 리카르도의 얼굴이, 가까이에 있었다. 하늘빛을 등진 젖은 금빛이 가슴을 일순 뒤흔들었다. 어두워져버렸네. 기껏 따듯했는데. 리카르도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 얼굴이면 어두워도 괜찮네요. 피이. 레이나가 웅얼거리며 대꾸했다.
가만히, 가만히. 리카르도는 말없이 레이나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물기에 젖어 더 깊은 색을 발해, 하얀 피부와 조화를 이루는 검은 머리카락을 보았다. 소녀티를 벗지 못한 부드러운 얼굴의 곡선을 보았다. 밤하늘을 가득 담은 눈동자와,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긴 속눈썹을 보았다. 결이 뚜렷한 콧잔등과, 애교 있게 솟은 콧망울과, 도톰하고 사랑스러운 입술을 보았다.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어 자아낸 더없이 아름다운 얼굴을, 줄곧 바라보기만 했다.
레이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며 볼을 붉혔다. 형언할 수 없이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리카르도의 시선에 빨려 들어가 녹을 것 같았다.

“......부끄럽게.”
“예뻐서.”

손길이 얼굴에 닿자, 레이나는 고개를 움직여 볼을 부볐다.

“이상하지, 온갖 미사여구는 다 들어봤는데. 당신에게 듣는 그 말이 세상에서 가장 부끄럽고 좋아.”
“예쁜 사람한테 예쁘다고 하는 말이 제일 정직하고 날것이니까.”
“......몰라. 정말 부끄럽단 말야.”

숱하게 들어왔던 어떤 찬미의 말보다도, 당신이 그저 예쁘다고 하는 그 말 한마디에.

“기쁨이 벅차올라서, 눈물이 날 것 같애.”

레이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엄청 울리는 남자로군. 쿡쿡대는 리카르도의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열어주세요. 눈물 젖은 눈이라도 좋으니까.”

얼굴을 덮은 손등에 키스한다. 레이나는 손가락만 살짝 벌려 젖은 눈동자를 깜박였다. 바로 가까이에 태양빛이 섞인 녹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숨결이 리카르도의 이마를 스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레이나는 당혹을 숨기고 변명하듯이 말했다.

“나, 나라서 당신 말에 그러는거...... 우우.”
“나도 알아.”

날카로운 눈매가 가늘게, 온화하게 누그러진다. 아, 정말. 그렇게 웃으면, 반칙이잖아. 오로지 레이나만 볼 수 있고 레이나에게만 허락된 리카르도의 미소.

“우읏. 반칙 대왕.”
“그래서 싫어?”
“누가 싫대? 당신 웃는 거, 좋단 말야. 너무너무 좋아.”
“응. 좋아. 레이나. 네가 너고, 내가 나라서 좋은 거야. 모든 게.”

레이나는 리카르도의 눈꼬리를 어루만졌다. 마주 웃음으로 답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걸 잊지 마. 알았지? 나도 그럴 테니까.”
“응. ......응. 리카르도.”

다짐 하듯이. 다잡듯이. 이야기가 끊기고 적막이 찾아온다. 구름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고요했다. 바람도 사라지고 시간이 멈춰버린 것이라 믿을 만큼, 애틋한 순간. 리카르도와 레이나의 입술이 포개졌다. 아랫니를 부드럽게 적셔 들어온 리카르도에게 응하며, 레이나는 젖은 금발을 빗어내리 듯 쓸었다. 들뜨게 달콤한 숨결이 흩어진다.
물기를 머금어 평소보다 가라앉았지만, 더 강하고 달게 퍼지는 향기. 리카르도는 레이나의 위에서, 물기어린 풀들을 그러쥐고 아득히 취해들었다. 레이나는 리카르도의 손길과, 입술이 선사하는 들뜸과 기쁨에 취했다. 엷게 노을 진 하늘을 향해 팔을 뻗어, 눈에 담고 가슴에 안았다.

“리카르도, 리카르도......”
“응. 레이나.”

몽롱하게 달뜬 목소리로, 레이나는 샘솟는 사랑을 담아 고했다.

“하늘이...... 예뻐.”

너무나. 너무나. 이제까지 보았던 그 어떤 하늘보다.

“너무, 예뻐......”

아름다운, 하늘.



* * * * *

 젖어 늘어진 치맛자락이 레이나의 몸에 들러붙어, 우아하게 굴곡진 몸매를 드러냈다. 손가락 끝으로 어여쁘게 도드라진 가슴 위를, 날씬한 허리를, 허벅지 위를, 여린 무릎을 그려내듯이 내려, 발등까지 선을 긋는다. 한 손에 알맞은 작은 발을 소중하게 들어 발가락 끝에 입을 맞추었다. 담뿍 물어 혀로 간질이자, 간지러운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몸을 꼬며 웃었다. 발가락 사이사이와 발등에 키스했다. 하얀 발등에 미미하게 솟아오른 힘들을 하나, 하나 골라내듯이 입술로, 경애를 담아.

“길을 딛고 달리는 맨발이랑 발목이...... 얼마나 예뻤는지 알아?”
“읏. 부끄러워......”

 빛을 향해 달려가는 네 뒷모습이, 힘차게 대치를 박차는 발이, 그런 발을 지지하는 장한 발목이, 종아리가, 다리가. 키스는 갈망을 담아, 허벅지 깊은 안쪽에, 붉고 뜨거운 흔적을 남겼다. 레이나는 리카르도의 입술이 닿는 매 순간 몸을 떨었다. 아련하게 퍼지는 애틋한 감각이, 리카르도의 헌신이 점점 심장 가까이 다가올 때 마다 세기를 더했다. 젖은 풀을 꼭 쥐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열에 흔들리는 시야에 어지러움을 느껴 눈을 꼭 감았다. 리카르도는 한동안 레이나의 희고 보드라운 허벅지의 살결을 신중하게 사랑했다. 

“리카르도오, 그런데에...... 우으.”
“으응?”

 레이나는 리카르도가 닿은 부분에서, 그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닿는 곳 전부에서 아릿하게 움트는 열을 참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주저하며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뭔데? 리카르도는 짓궂게 웃으며 채근했다. 레이나는 필사적으로 상체를 뒤틀고, 발끝에 힘을 주고, 덜덜 떨리는 무릎을 진정하려 애썼다. 감은 눈 꼬리 끝에서 달고 아픈 눈물이 방울졌다. 안타까울 만큼 필사적이다.

“안 참아도 돼.”

 드로워즈 속으로 리카르도의 손이 침범했다. 만져줘, 못 참겠어. 레이나는 막혔던 숨을 토해내며 결국 머리끝까지 치민 갈망을 쏟아냈다. 뜻대로. 리카르도는 토라진 아이를 달래듯이 다정한 손길로 레이나의 반쯤 열린 봉오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단 숨과 함께 예쁜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린다. 숨결에 실린 목소리가 리카르도의 귓가에 거미줄처럼 감겼다. 
 레이나, 완전히 젖었어. 먼저 시작해서 미안해. 묘하게 의미가 어긋나 있는 말. 드로워즈가 내려가고, 부풀어 피어나기만 기다리는, 젖은 가련한 봉오리가 남자의 혀끝으로 한 잎, 한잎 벌어졌다.

“다 닦아줄테니까. 곱게 말려줄게...... 너무 예뻐.”
“싫어...... 너무 젖었...... 보지마, 부끄러워......”
“자꾸 보게 되는데 어떡해.”

 리카르도의 손. 마디가 뚜렷하고, 거친 억새 같은 손. 레이나의 살결을 어루만지는 손. 레이나의 매끈한 내부로 침입해 온 삶의 억새. 생명을 낳는 손, 손가락. 펜을 그러쥐고 시대를 낳고, 싸워나가는 손가락이 레이나의 대지 속에서 어리광 피우듯 움직였다. 또 다른 생명을 낳을 비 온 뒤의 촉촉한 대지를 양껏 보듬어 준다.

“들어가도 되나요?”
“네, 네에......”

 대지는 꽃을 끌어안는다. 사력을 다해, 스러지지 않도록. 꽃이 대지를 선택하고, 대지가 꽃을 안아, 뿌리를 내리고, 그 과정은 애잔하고 애절하고 또 사랑스러워. 레이나는 살살 긴장을 풀고 감격하고 안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리카르도의 목을 안았다. 사랑해 레이나. 응, 나도 사랑해. 리카르도.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모르겠어...... 풀잎이 바삭거렸다. 소리 없이 흔들리는 머리카락에서 물방울들이 떨어져 부서졌다. 레이나의 눈물도 함께 부서졌다.
 리카르도는 대지를 바라보았다. 리카르도가 의지하고 있는 대지, 사랑을 붓고 있는 대지, 그림자 드리운 엘 모로의, 까스띠예의 모든 대지가 레이나 같았다.
 레이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레이나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 사랑을 안고 있는 하늘, 맑고 푸르고 찬연하게 빛나는 엘 모로의, 까스띠예의 모든 하늘이 리카르도 같았다.

“사랑해, 사랑해...... 리카르도, 보내줘, 날게...... 날게 해줘......”
“사랑해...... 날아. 날려줄게.”

  깊게, 강하게. 최고조로 향하는 피치. 그 끝에서, 이윽고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아득한 하늘의 저편으로 날았다. 레이나는 충격과 기쁨에 목 놓아 울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하늘의 빛으로 물들었다. 리카르도 또한 뿌리 내린 도취에 젖어 대지와 만난 것을 하염없이 고마워하고, 기뻐했다.

 나란히 누워 이제 사라져가는 빛의 여운이 맴도는 하늘을 나른하게 바라본다. 

“미안. 요즘 계속 이상한데서.”

 리카르도가 쑥스러워 하며 사과했다. 레이나가 키득 웃으며 리카르도의 코끝에 입 맞췄다.

“왜 사과 해? 짜릿하잖아. 젊은데 뭐 어때.”
“음. ......맞아. 젊으면 이런 거 저런 거 다 해볼 수 있는 거야. 혁명도 하고, 사랑도 하고, 뭐.”
“다음엔 물 속에서 해볼래?”
“우와. 인어랑 하는 기분일 것 같은데.”

 인어 맞지, 뭐. 근데 꼬리가 없네요. 레이나가 크게 웃으며 리카르도의 상체를 끌어안았다. 레이나의 등을 쓸며 웃는다.

“괜찮답니다. 맨발이 너무너무 예쁘니까.”
“인어공주는 아름다운 다리를 대가로 목소리를 줬는데 말야. 난 대체 뭘 바친걸까? 뭘 것 같애?”
“뭐였어?”

 레이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다, 머잖아 선선히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맥을 놓듯이 웃는 레이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동안 묵묵하던 리카르도가, 레이나의 머리를 품으로 끌어안으며 말했다. 목소리 끝이 살짝 갈라지며 늘어졌다.

“그냥 처음부터 다리가 있었던 거야. 변태하듯이 지느러미 속에서 나온 거야. 해변으로 나가서 몸을 일으켜 서는 순간, 햇볕에 발가락이 간질간질하고...... 그랬던 거야.”

 태양을 동경한 인어 공주님, 어여쁜 목소리와 다리를 가지고, 육지에 올라와 한 걸음, 한 걸음, 걸음마를 시작해서. 비틀거리고 넘어져 무릎이 까졌지만 그래도 따듯한 모래를 밟는 감촉이 너무 좋아서, 기뻐서. 태양 빛이 간질이는 느낌이 너무나 좋아서.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달리는 게 좋은가봐, 나. 태양 빛이 좋은가봐.”
“그래. 그런가봐.”
“육지에서 본 왕자님은, 동화 속에서 본 왕자님은 아니었지만. 바다로 돌아가는 걸 잊어버릴 만큼이나 사랑하게 되었다고......”

 파도 소리가 멀어질 만큼 달려서, 그리고 만난 왕자님. 왕자님을 사랑하고, 더 이상 바다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오로지 사랑만 하게 돼서. 그래서.

“잊어버려도 돼. 원한다면 달리고 또 달려도 돼.”
“이미 기억나지 않아. 당신만으로 가득차서.”
“되찾고 싶어?”

 왕자를 죽이는 일도, 물거품이 되는 일도 없이. 그렇게. 

“아니.”
“......응.”

 바다를 잊어버린 인어공주님과, 오로지 인어공주님만을 사랑하는 왕자님. 그런 동화......
 레이나는 리카르도의 품속에서 노래했다. 날 적부터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한다.


만약 어머니가 문을 닫으라 말하시면, 아름다운 하늘이여
문을 닫는 척만 하도록 하세요. 아름다운 하늘이여
꼭 문을 열어두도록 해요

아아, 노래 불러요, 그리고 울지 말아요
왜냐하면 노래하는 건, 아름다운 하늘이여
마음을 기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떠나버린 새는 결국 돌아와요, 아름다운 하늘이여
둥지를 채운 것을 찾기 위해 돌아와요, 아름다운 하늘이여
잘 보관해 두도록 해요


“아름다워. 따듯하고, 포근한 색이야. 너무 예쁜 하늘이야.”
“아름다워. 하늘이 비친 네 눈이. 하늘빛을 담고 있는 눈동자가 아름다워.”

 푸르고 붉은 빛을 담아낸 너의 깊은 까만 눈동자가 예뻐. 레이나가 수줍게 웃었다. 그런 날 바라봐 주는 당신의 눈동자도 아름다워.  리카르도의 볼을 쓰다듬고 눈썹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어.”
“곧 해가 질 거야. 젖어서 추울텐데?”
“흠.”

 리카르도가 무안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시선을 피했다. 키득키득 웃고 레이나가 몸을 일으켰다. 손가락을 꼽으며 제안했다.

“리카르도. 경치가 좋은 데 방을 잡자. 창가에서 도시가, 사람들이 보이는데서. 반짝반짝 빛나는 거리를 보고 싶어.”
“응, 그래.”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과 키스를 나누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분명 별사탕 같을 거야. 작고, 달콤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겠지.”
“그럴 거야. 창가에서 지켜보고, 그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는 연인처럼 마주 안을 거야.”
“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말해줘.”

 시선을 마주하고, 세상 모든 것에 고하며,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너를 가장 사랑해.”
“당신을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해.”

 단 한순간도 거짓 없는 충만한 사랑을, 너(당신)에게 바친다.










죄, 죄송해요, 씬 묘사때문에 ...... orz(......)

아니 밤+꿈+다음날은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 20페이지라니, 20페이지라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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