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으스러진 세계 - Lv. 5 └- [DQ] 천공의 레프리제

문제의 독 두꺼비에게 가까워질수록 유리에는 마음을 다잡아야했다. 좁은 굴에 백골이 넘쳤다. 얼마나 많은 제물을 잡아먹었을지 가늠하다 질려버렸다. 쉭쉭거리는 호흡소리가 캄캄한 저편에서 들렸다. 인근은 잔챙이 마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세이덴은 유리에가 나서겠다는 걸 한사코 말리고 가장 앞장섰다. 아시야가 만일을 위해 스카라를 걸어주었다.
세 사람의 기척을 느꼈는지, 쿵쿵거리며 독 두꺼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일정 사거리에 다다랐을 무렵, 긴 촉수가 어둠을 뚫고 날아들었다. 세이덴은 간발의 차로 피하고서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달렸다. 유리에와 아시야도 뒤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엄청 크잖아?”

세이덴이 경악했다. 마주한 독 두꺼비는 세 사람이 생각한 이상으로 비대했다. 높이만 세이덴의 세 배는 되어보였다. 통로를 꽉 채우는 커다란 몸집과 피부에 돋아난 돌기는 녹아내려 흉측한 진물이 흘렀다. 눈동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붉은 안광만이 형형했다. 몸 주변에 이미 독기가 가득해, 미리 대비하고 오지 않았다면 꼼짝도 못하고 쓰러질 뻔 했다.

“진화의 비법이 저 몸을 버티지 못하고 있어요. 이 틈에 어서 처단합시다!”

세이덴이 독 두꺼비의 주의를 끄는 동안 유리에와 아시야가 주문을 외웠다. 유리에는 루카니를, 아시야는 바기를 사용했다. 방어력을 낮추는 루카니의 힘이 독 두꺼비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아시야가 일으킨 바람이 표피를 날카롭게 베어냈다. 세이덴은 부메랑 대신 가죽 채찍을 휘둘러 바기가 훑고 지나간 상처 위를 더 깊게 도려냈다.
그르르륵! 독 두꺼비가 비명을 지르며 거대한 팔을 붕붕 휘둘렀다. 세이덴이 피하지 못하고 맞아 저편에 등을 부딪쳐 나뒹굴었다. 스카라 덕분에 큰 피해는 모면했으나, 그럼에도 고통이 극심했다.

“큭, 조심해!”

쿵쿵거리며 독 두꺼비가 발을 굴렀다. 굴 내가 흔들려 유리에는 순간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세이덴 님은 제게 맡기시고-”

아시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리에가 검을 양손으로 꽉 쥐고 뛰었다. 촉수가 정면으로 날아왔으나, 옆쪽에서 날아든 채찍에 휘감겨 아슬아슬하게 유리에의 어깻죽지를 스쳐 지나갔다.

“이 녀석, 어딜……!”

유리에는 스친 상처에 눈 깜짝 하지 않고 독 두꺼비의 배를 향해 있는 힘껏 검을 꽂았다.

“이야아아아!”

푸욱 박혀 들어간 칼날을 비틀어 위로 크게 베어냈다. 독기 가득 찬 고름이 튀어 유리에의 온 몸에 덕지덕지 묻었다. 독 두꺼비가 고통에 발광하며 유리에를 후려쳤다. 얼굴을 맞아 눈물이 날 만큼 아팠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물러났다. 머리에서 터진 피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세이덴은 촉수를 채찍으로 붙잡은 채로 완강히 버텼다. 아시야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 팽팽하게 당겨진 촉수를 잘라버렸다. 당기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세이덴은 또 벽에 부딪쳐 쓰러졌다. 독 두꺼비는 찢어지는 괴성을 내며 마구 몸부림쳤다.
유리에는 머리를 휘저어 어지러움을 몰아내고 악착같이 검을 휘둘렀다. 독 두꺼비의 발길질에 복부를 얻어맞아도 비명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아시야가 뒤늦게 유리에에게 스카라를 걸었다.

“유리 님, 목 가운데를 노려요! 저기만 유독 반짝여요. 분명 진화의 비법의 근원일 거예요!”

유리에가 올려다보자 아시야의 말 대로 두터운 살 아래쪽 목 부근에 노란색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하지만 너무 높았다.
그 순간 기지를 발휘했다. 휘두르는 독 두꺼비의 팔에 일부러 맞고, 충격으로 몸이 붕 떠올랐다. 허공에서 몸이 거꾸로 뒤집히는 순간 유리에는 독 두꺼비의 머리를 향해 주문을 날렸다.

“메라아!”

독 두꺼비의 정수리에서 불꽃이 터졌다. 충격으로 독 두꺼비가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다.
유리에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두꺼비가 그 위를 덮치듯 쓰러졌다!

“유리!”
“유리 님!”

세이덴과 아시야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독 두꺼비는 그대로 정지했다. 두 사람이 서둘러 독 두꺼비의 상체를 까뒤집자 아시야가 말한 목덜미에 유리에의 칼이 박혀있었다. 쓰러진 유리에는 온 몸에 독 고름과 피를 뒤집어쓴 채로 미동이 없었다. 세이덴이 유리에의 몸을 붙들고 흔들었다.

“유리, 정신 차려. 유리에! 제길, 아시야!”
“자,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아시야가 공황을 수습하고 유리에의 상태를 살폈다. 상처는 심했으나 다행히 숨은 붙어있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호이미를 퍼부었다. 몸의 상처가 거의 다 아물 쯤 유리에의 눈꺼풀이 떨렸다.

“정신이 드세요?”
“기분이 안 좋아요.”
“독기 때문이에요. 질경이 덕에 중독은 안 됐지만, 빨리 씻어 내야 해요.”

세이덴은 말문이 막혀 비척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유리에를 지켜보았다.

“세이덴. 괜찮아?”

자기 자신보다도 세이덴을 걱정하는 그 말에 울컥하고 감정이 치밀었다. 세이덴이 유리에의 볼을 아주 가볍게, 찰싹 쳤다. 놀란 유리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막무가내로 달려들지 말라고 했잖아. 왜 죽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굴어? 이렇게 함부로 쓸 목숨이야?”

언제나처럼 소리 지르지 않고, 건조한 목소리로 화를 내는 세이덴은 처음이라 유리에가 몹시 당황해 대답을 못했다. 세이덴이 앞장서 나가버렸다. 유리에는 아시야의 부축을 받아 걸었다. 돌아나가는 길은 무거운 침묵을 벗삼았다.
굴 밖으로 나오자 세이덴은 마차를 가지고 오겠다며 메이의 집으로 돌아갔고, 유리에는 냇가에서 몸을 씻었다. 아시야가 유리에의 옷을 불태웠다. 독에 절은 옷은 이미 회생불가였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유리에는 몹시 우울해 보였다. 아시야가 안쓰러운 마음에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두 분께 너무 염치없는 부탁을 했어요.”
“아니에요. 아시야 씨 혼자서는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하겠다고 한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한 가지 여쭤도 될까요?”
“네.”

아시야는 타들어가는 불꽃과 쪼그려 앉아 몸을 녹이는 유리에를 번갈아 보고, 어렵게 물었다.

“유리 님은, 유리에 님이신가요?”
“맞아요.”

아시야가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공주님이셨군요! 살아계셔서 다행입니다.”
“저한테 예를 차릴 필요 없어요. 일어나세요.”
“그럴 순 없습니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당신은 그랑바니아의 고귀한 혈통. 이렇게 무사하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아시야 씨. 저는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제 목숨 하나 건사하자 도망친 사람일 뿐이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오빠가 살아있단 소문 말이지요?”
“네. 왕자님께서는……”

유리에가 고소를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아시야의 얼굴에 짙은 낭패가 스쳐 지나갔다.

“공교롭지만, 그렇게 됐어요.”
“아니, 아닙니다. 공주님의 생존을 비하하려던 건 결코 아닙니다. 그저, 이해가 안 되는 점이 떠올라서 혼란스러웠을 뿐입니다.”
“어떤 점이오?”

마침 세이덴이 돌아왔다. 유리에가 긴장했으나 돌아왔을 땐 언제나의 세이덴이었다.

“늦었어. 이제 움직여야 해. 아시야, 당신은?”
“두 분은 어디로 가시는지요?”
“라인하트로 가요. 마지막 정기선을 타야해서 사이네스 항구로 가던 중이었어요.”
“그렇다면 항구까지 동행하게 해 주십시오. 도움이 될 겁니다. 또, 공주님께 꼭 드릴 말씀도 있고요.”

세이덴은 아시야가 유리에에 대해 어떻게 아는지 생각하다, 자신이 이름을 불렀음을 떠올리고 앓는 소리를 냈다. 유리에가 괜찮다고 눈짓했다.

“마을에는 가보지 않아도 괜찮겠어요?”
“이미 사지로 버림받은 몸입니다. 제물을 바쳐야 할 존재도 사라졌으니, 이후는 그들의 몫이겠지요. 여기 일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아요.”

두 사람은 아시야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마차를 타고 길을 떠나며 메이의 집을 스쳐 지나갔다. 유리에가 외롭게 남은 집을 마지막으로 일별했다. 문가에서 어젯밤 보았던 메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뒤에 활을 손에 든 젊은 남자도 함께 서 있었다. 유리에도 손을 흔들어 작별했다.
아시야가 유리에와 같은 쪽을 바라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뭔가가 있었냐고 물어도 유리에는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

밤이 깊어 야영지를 꾸리고 세 사람이 한 숨 돌렸다. 유리에는 미뤄둔 아시야의 이야기에 대해 물었다.

“아까 말씀드렸지요, 단지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러 온 건 아니었다고요. 이 일이 끝나면 저는 남쪽으로 가서 왕자님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는 저희 수도원장님의 지시기도 했어요. 천공의 용자이신 왕자님께서 돌아가셨다면, 수도원장님께서 지시한 일이 어떻게 맞물리게 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기에 혼란스러웠고요.”
“혹시, 천공의 무구에 관한 이야기인가?”

유리스의 생사와 연관되어 가장 불가사의한 점이었다. 세이덴이 지적하자 아시야가 수긍했다.

“천공의 용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 천공의 무구는 아무런 힘을 내지 못합니다. 그랑바니아의 멸망 때 각지로 흩어진 천공의 무구 중 하나가 라인하트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는지요?”
“아니오. 처음 들어요.”
“그게 거기에 왜 가?”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듣기로 천공의 갑옷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갑옷은 마치 라인하트를 지키려는 듯 신성한 힘을 발하여, 인근 마물의 접근을 막고 있어요. 천공의 용자가 살아있지 않다면 그러한 기적이 일어날리 없다, 그래서 수도원장님이 고향으로 떠나는 제게 왕자님의 소문을 쫓아 생사를 확인해보라 지시하셨습니다.”

유리에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세이덴에게 천공의 검을 가져와 달라 부탁했다. 아시야에게 천공의 검을 보여주고 지난 일을 모두 설명했다. 아시야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유리에의 고초를 위로했다.

“공주님의 말씀을 들으니 알겠습니다. 천공의 무구는, 비록 용자가 없더라도 이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 힘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공주님은 비록 용자가 아니지만, 왕자님과 같은 피를 이어받아 태어나신 분. 전설의 타바사 공주처럼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데 반드시 일조하실 겁니다.”

세이덴이 미간을 찡그리고 기분 나쁜 티를 냈다.

“그거 마치 꿩 대신 닭 같군.”
“아니야. 아시야 씨는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용자님, 용자님,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은 죄 용자한테 떠넘기다가, 그 용자가 죽어서 없어지니까 이젠 같은 피를 이은 사람이라고 대신 지켜 달라, 구해 달라 그러는 거잖아. 아주 다들 제멋대로군. 어디 반박하려면 반박해보시지. 스스로 구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제물이나 갖다 바치며 자기 위로하던 카니알 녀석들이랑 다를 게 뭐야?”

아시야는 입을 꾹 다문 채 세이덴을 노려보기만 했다. 유리에가 엄하게 말했다.

“말이 심해! 아시야 씨가 겪은 일을 알면 더욱이 그런 말은 해선 안 돼.”
“제기랄, 네 맘대로 해.”

세이덴이 화를 내고 마차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유리에가 대신 사과했다.

“세이덴은 제 걱정이 많아서 그래요.”
“괜찮습니다. 세이덴 님의 말이 맞아요. 전설의 용자라는 희망에만 오직 의존해 왔기에 지금의 사달이 났는지도 모르지요. 저 또한 무엇보다 공주님의 안위를 걱정해야함에도.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담을 드리려던 건 아니었어요.”
“제가 결정한 일이니까, 아시야 씨가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요. 지금도 많이 힘들잖아요?”

유리에가 아시야의 손을 잡고 다독였다. 아시야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시야를 진정시키고 유리에는 세이덴을 찾았다. 마차 뒤쪽 풀밭에 드러누운 채로 잠든 것처럼 보였다. 유리에가 옆에 다가가 앉았다. 주저주저하다 말을 걸었다.

“자?”
“잔다.”

퉁명스러운 대꾸가 바로 돌아왔다.

“미안해.”
“미안한 줄은 알아? 말이면 다야?”
“정말로 미안해.”

유리에는 풀이 죽어 무릎을 안고 몸을 움츠렸다.

“내가 내 목숨이 하찮은가봐.”

세이덴이 깊은 한숨을 내 쉬며 일어났다.

“야, 너, 자꾸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미안해……”
“그만. 사과하지 마. 네가 네 목숨을 아낄 이유를 못 찾겠으면, 네 목숨을 구한 날 위해서라도 아껴.”

한 번에 말의 의미가 잘 와 닿지 않는지 유리에가 한참 세이덴의 말을 곱씹다가 웃었다.

“알았어. 그럴게.”
“내가 오히려 너 때문에 제명에 못살겠다. 봐. 맞은데 보여줘.”

세이덴이 유리에의 얼굴에 손가락을 대고 때렸던 볼을 살폈다.

“그렇게나 살살 쳤잖아. 하나도 안 아팠어.”
“어쨌거나 여자애한테 손찌검이라니, 아버지가 알면 날 죽이려 들 거야.”
“오빠가 살아있었으면?”
“죽는 걸로 안 끝났겠지.”

넌더리내는 세이덴의 모습에 유리에가 기분 좋게 소리 내 웃었다. 덕분에 어서 가서 잠이나 자라는 축객을 받았다.

유리에는 그 날 지난밤의 꿈을 다시 꾸었다. 자욱한 안개 너머에서, 이번에는 저번 보다 또렷한 이야기 소리를 들었다.

- 당신이 왜 울어.
- 내가 왜 우냐고? 그건 당신이 당신을 너무 아낄 줄 모르기 때문이야.
- 미안해.
- 바보! 미안한 줄은 알아? 아니, 사과하지 마. 사과 받으려고 우는 거 아니란 말이야.

유리에가 목소리 쪽으로 향했다. 이제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으나, 분명 가까이에 있었다. 여자가 애달프고 또 심지 곧은 목소리로 호소했다.

- 당신 자신을 위해서 살기 어렵다면, 당신을 사랑하는 날 위해서 살아줘.

유리에는 기시감에 멈춰 섰다. 여자의 말에 남자는 행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모든 응어리를 전부 씻어낸 듯 해맑게.

- 응, 그럴게. 비앙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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