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앵귀/이바x치즈루] 하계열(夏季熱) - 1 글과 그림

* 게이오 3년 7월 시점. 바람의 장 기점 4장 중반 / 수상록 오봉 이벤트 전 이야기


하계열(夏季熱)

1.

게이오 3년(1867년), 7월.

더위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교토의 거리는 기온 마츠리로 인산인해였다. 올해의 야마보코 순행(山鉾巡行:기온 마츠리 최대 행사로 32개에 달하는 축제 가마가 거리를 행진함, 현재에는 33개 가마가 참가)에 참가하는 가마가 이렇다느니, 요이야마(宵山:야마보코 순행 전야제로 사흘간 야시장 등이 열림)의 준비가 저렇다느니, 곳곳에서 기온 축제음악(祇園囃子)을 연습하는 피리소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로 한층 들떠 있었다. 시국이 어두워도 사람들의 즐거움을 채 앗아갈 순 없었는지, 아니면 어둡기에 더 즐겁기 위해 노력하는지 유독 활기가 넘쳤다.
에도에서 축제 기간 중 교토시찰을 명받은 이바가 서원본사에 들른 것은 요이야마가 시작하는 날의 늦은 오후 무렵이었다. 함께 상경한 친우인 모토야마는 또 유키무라 씨를 만나러 가느냐며 핀잔을 줬지만, 교토에 온 이상 잠시라도 만나지 않으면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오전, 오후 중에는 착실히 시찰 업무를 수행했고 마츠리를 즐기며 한 잔 하러 가자는 동료들의 청을 거절했다. 일전, 타케다 간류사이와의 일 이후 처음 치즈루와 만나는 날이었다. 그간 불안해하진 않았는지, 힘들진 않았는지, 무사히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었다.
편지로 안부를 묻곤 해도 글귀로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치즈루는 곧잘 어려움을 숨기고 무리하는 성격이었으므로, 이바는 한시라도 빨리 치즈루를 만나 확인하고 싶었다.

“누구 안 계신가요?”

서본원사의 입구에서 목소리를 냈다. 몇 번 사람을 찾자, 안쪽에서 익숙한 대사 한 명이 나와 맞아주었다.

“이바 씨 오셨슴까?”

신선조 국장 콘도 이사미의 급사 중 한명인 노무라였다. 언제나처럼 치즈루가 맞이하러 나오지 않자, 맥이 풀리며 낙담한 표정을 지어버렸다. 노무라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해 말했다.

“유키무라 선배라면 저녁 찬거릴 사러 갔으니 금방 돌아올 검다.”
“아닙니다. 저, 토시 씨나 다른 분들은 잘 계십니까?”
“둔소 이전 때문에 다들 바쁜데다, 축제 기간이고 거리가 부산스럽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슴다. 오봉(お盆) 때 까지는 바쁠 예정이라고 합니다. 부장님은 안에 계시니 들어가 보십쇼. 차를 내가겠슴다.”
“감사합니다, 노무라 군.”

지나치게 감정이 들떴음을 깨닫고 이바가 마음을 추스른 뒤 히지카타의 방으로 향했다. 거리가 부산스러우면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신선조도 응당 바쁠 수밖에 없었다. 더해 어릉위사(御陵衛士)의 분리로 많은 수의 대사가 떠나버렸으므로 남은 대사들의 부담 또한 클 것이었다. 뒤늦게 치즈루에 대한 일로 가득 차 신선조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자괴했다.

“토시 씨, 하치로입니다.”

히지카타의 방 앞에서 기척을 알리자,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야 대답이 돌아왔다.

“뭐야, 하치로냐. 들어와라.”

그 목소리는 평정을 둘렀지만 지쳐있었다. 이바가 방으로 들어가자 히지카타는 잠깐 눈을 붙인 참이었는지, 흐트러진 머리와 옷깃을 정리하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전에 보았을 때 보다 확연히 피로에 찌든 얼굴이다.

“오랜만입니다. 쉬고 계셨었군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니. 슬슬 일어나려 했으니 신경 쓰지 마. 넌 시찰이냐?”
“예. 며칠간은 교토에 있을 예정입니다. 역시 일이 많으신가 보군요.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둔소 이전도 문제도 있고 이럴 때 마츠리다 뭐다 난리법석이라 대사 녀석들도 괜스레 마음이 들떠선.”

혀를 차며 투덜거리는 히지카타를 이바는 안쓰러움을 담아 바라보았다. 걱정의 시선을 느꼈는지, 히지카타가 미간을 찡그리며 웃었다.

“앓는 소리 할 만큼은 여유가 있단 의미니 신경 쓰지 마라. 그리고 어차피 네 녀석의 목적은 나나 대사들이 아니라 유키무라겠지. 겸사 받는 걱정은 사양하겠어.”
“토시 씨, 그럴 의도는-”
“이제 와서 뭘. 네 생각 정도는 뻔하지. 이해 못할 일도 아니고. 최근 녀석은 보기엔 아니어 보여도 꽤나 기운이 없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치즈루와 편지를 주고받곤 해도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해선 도통 털어놓지 않으니까요.”

이바의 목소리에 섭섭함이 묻어나왔다. 치즈루가 그러는 이유를 히지카타는 알고 있었다. 어쨌든 상대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치즈루의 그 마음도 히지카타가 이해하지 못할 소지가 아니었다. 자신이라 한들 왜 아니겠는가? 저 사람 좋은 청년에게 고민이나 어려움을 토로했다간 남의 일로 여기지 못하고 뛰어들려고 할 텐데 말이다.

“너란 녀석은 정말 변하질 않는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그냥 그런단 거다. 어릉위사로 떠난 녀석들 중엔 유키무라와 친한 대사들도 있었고, 타케다와의 일도 있었고. 또…… 그러고 보니, 너 유키무라의 정체에 대해선 알고 있었냐.”

이바는 잠깐 고민하는 듯 했으나, 어느 정도는, 이라며 수긍했다. 히지카타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오센이 왔던 일과 오니 일당이 들이닥친 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바는 놀람과 안타까움, 그리고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치미는 격분을 억누르고서 담담한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토시 씨와 다른 분들이 치즈루를 지켜주셨군요.”
“이쪽에서 맡기로 한 이상 당연한 일이야. 감사 받을 일도 뭣도 아냐. 뭐, 녀석이 그 일로 부쩍 평소처럼 나대지 않고 가만 숨죽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썩 보기 좋진 않아.”

치즈루가 어떤 위치에 있건, 그 성격과 밝은 모습이 그간 신선조에 나쁜 영향을 주었다곤 생각할 수 없었다. 많건 적건 치즈루에게 위로받고 즐거워한 이들이 있었다. 콘도 또한 치즈루의 최근 상태를 걱정하던 참이었다. 히지카타는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쪽에서 어떻게 해주고 싶어도 말이지, 심정적으로 그럴 여유가 없으니까 말이야. 네가 와서 마침 잘 됐다.”
“마침 잘 됐다는 건?”
“아까 도울 일 운운했겠다? 유키무라를 데리고 마츠리 구경이라도 하고 와라. 일이야 바빠도 옆에서 낙담한 녀석이 알짱거리는 게 더 귀찮으니까.”

히지카타는 귀찮다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바는 그가 내어준 깊은 사려에 울 것처럼 웃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치즈루를 생각하며 동시에 치즈루를 걱정하는 자신을 배려해 준 것이다.

“실례합니다. 히지카타 씨, 이바 씨. 차를 가져왔습니다.”

문 밖에서 치즈루의 목소리가 울렸다. 돌아와서 노무라와 역할을 바꾼 듯 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며 히지카타가 이죽거리고 허락하자, 급하게 온 탓인지 볼이 살짝 상기된 치즈루가 차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치즈루가 두 사람의 앞에 차를 내어주고 이바를 살며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똑같이 걱정을 담뿍 담아 서로를 살핀다. 하여간, 똑 닮은 것들이 잘 하는 짓이라며 히지카타가 속으로 넌더리를 냈다.

“유키무라.”
“앗, 네!”
“뭘 멍하니 있어. 네게 부탁할 게 있다.”
“말씀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치즈루가 자세를 바로 해 앉고 진지한 눈으로 히지카타를 응시했다.

“……너희들 말이다.”
“예?”

이바와 치즈루가 동시에 대답했다. 히지카타는 말한들 입만 아프리라 고개를 저었다.

“마츠리 기간 동안 거리가 소란스러워질 테고, 거리 순찰에도 손이 많이 든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판이니 너도 참가해.”
“알겠습니다. 그럼 어느 대사 분들과 함께 할까요?”
“대사 녀석들과 갈 필욘 없어. 네게 맡길 순찰은 신선조 대사로써 할 게 아니니까. 하치로와 동행해라. 둘이서 부부 흉내라도 내면서 수상한 녀석이 없는지, 그런 가게 같은 덴 없는지 살펴봐.”

성실한 치즈루를 이바와 동행시키기 위한 적당한 구실이었으나, 단어 선택이 좋지 않았는지 이바와 치즈루 두 사람이 당황해 벌컥 목소리를 높여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부, 부부라뇨! 토시 씨,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어디까지나 이건 일의 일환이고-”
“마, 맞아요! 그, 혀, 형제라던가, 그런 정도면 충분하니까요!”
“알겠다고. 둘 다 진정하라고. 정말 너희들은 어쩔 수가 없구만.”

덕분인지 치즈루는 별 의심 없이 히지카타의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히지카타는 피곤하다며 둘을 방에서 쫓아내버렸다.
싫지 않은 축객을 받고서 나올 쯤엔 당황도 가라앉아, 두 사람은 겨우 평범하게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치즈루. 그간 별고 없었나요?”
“덕분에요. 이바 씨도 많이 힘들지 않으세요?”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습니다. 걱정해주어 고마워요.”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바는 치즈루의 찻잔 정리를 도왔다. 이후 정원의 나무 아래 그늘에 앉아 후덥지근한 열기를 식혔다. 대화가 끊기고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하고픈 말은 많지만 목구멍에서 맴도는 느낌이었다.

“치즈루.”

감정을 가다듬은 이바가 다정하게 치즈루를 불렀다. 치즈루가 이바를 올려다보았다.

“토시 씨에게서 들었습니다. 오니들에 대한 일요.”
“죄송해요. 부러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저도 마음의 정리가 잘 안 돼서.”
“압니다. 제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치즈루에게서 받은 편지에는 이바에 대한 걱정 외에는 별 다른 말이 없었다. 이바가 걱정의 편지를 보내면 치즈루도 걱정의 편지를 보낸다. 그러니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숨긴다. 치즈루는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숙였다. 이바가 당황해 덧붙였다.

“당신을 책망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했을 뿐이에요. 고개를 드세요. 당신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바 씨……”
“일전 당신과 막부를 둘 다 지켜야 한다고 말했지만, 역시 이렇게 떨어져 있어서는 당신을 지키는 일에는 한 발 늦고 마는군요.”

치즈루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바는 몇 번이고 자신을 지켜주었다. 정말로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치즈루가 정말로 위험할 때에는 바람처럼 달려와 주었다. 교토에서 처음 만났던 순간에도, 니조 성에서도, 타케다에게 위협을 당했을 때에도, 그에게 끌려갈 뻔 했을 때에도. 이바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이바 씨는 충분히 저를 지켜주고 계시니까요.”

솔직한 마음이었다. 자괴감에 괴로워하는 이바의 표정을 바라보는 것이 괴롭다. 그는 웃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치즈루는 그의 상냥한 미소를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을 가감 없이 자아냈다.

“이바 씨는 제 목숨뿐만 아니라 마음도 지켜주고 계세요. 타케다 씨에게 괴물이란 소릴 들은 절, 보통의 소녀라고 이야기 해주셨잖아요. 어릴 때부터 쭉 이바 씨의 그 말에 큰 위로를 받았어요.”
“치즈루.”
“오센에게서 제가 인간이 아니라 오니라는 이야길 들었을 때, 많은 게 이해가 됐어요. 상처가 금방 나아버리는 이 몸도 제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사실은 슬펐어요.”

의심 없이 인간이라 믿고 살아왔던 시간들이 공허해졌다. 아무리 특이한 체질을 가졌어도,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믿음만큼은 굳건했다. 보통이 아니기에 배척당했던 시절이 있었어도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동시에 안도감도 들었어요.”
“안도감?”
“더 이상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는 일에 고통 받진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 제가 인간이 아니더라도……”

치즈루는 이바의 속을 꿰뚫어 보는 맑은 눈동자를 마주보는 게 부끄러워져서 시선을 살며시 피했다. 낮의 열기가 채 식지 않았기 때문인지 볼이 여전히 뜨거웠다.

“이바 씨는 괜찮다고 해 줄 테니까요.”

방황이 없었다면 거짓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사실은 지금도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 무게에 압사당해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을 버티게 해 주는 것이 그럼에도 자신을 받아들여준 신선조 사람들과 이바였다. 신선조 사람들이 알면서도 받아들여주고, 있을 곳을 만들어 주었다면 이바는 근본적으로 모든 진실을 받아들이고 방황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주었다.
설령 인간이 아니더라도, 치즈루는 치즈루일 뿐이라고 말해줄 사람이 있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이바가 대답이 없자 치즈루가 불안해 힐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치즈루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상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치즈루는 그간 찌들어있던 가슴 속 먹구름이 가시는 기분이 들었고, 어쩐지 조금 울고 싶어졌다.

“감사합니다. 치즈루. 정말로 고마워요.”
“어째서 이바 씨가 감사해 하시는 거예요. 제가 할 말인데.”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두 사람은 마주 웃었다. 떨어져 있던 동안 서로가 품었던 어두운 상념들이 비로소 깨끗하게 사라졌다. 해가 저물어 연보라색 잔상을 하늘에 드리웠다. 이바와 치즈루는 바람에 바스락대는 나뭇잎 사이로 그 하늘을 나란히 올려다보았다. 멀찍이서 축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적막은 불편함이 아니라, 상대가 곁에 있음이 어떤 일 보다 자연스러운 시간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저녁 나들이에 나섰다. 명목은 순찰이었고, 치즈루는 어쨌든 그리 생각했지만, 오랜만에 이바와 하는 외출이 기뻐서 만면에 행복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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