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앵귀/이바x치즈루] 하계열(夏季熱) - 2 글과 그림

[박앵귀/이바x치즈루] 하계열(夏季熱) - 1

2.

기온의 거리에 평소와 다른 불빛이 무리를 이루어 아름다운 빛깔을 자아냈다. 치즈루는 처음엔 별이 떨어져 빛을 밝힌 게 아닐까 생각했다. 곧 그것이 요이야마의 상징이자 호코(鉾:마츠리 행진용 가마)를 장식한 등롱의 불빛임을 알자,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바가 눈치 채기 전에 서둘러 화두를 열었다.

“아름답네요.”
“치즈루는 기온 마츠리를 구경하는 건 처음인가요?”
“네. 낮 동안엔 순찰을 따라 나서긴 했지만, 이렇게 요이야마를 구경하는 건 처음이에요. 대사님들은 언제나 이 무렵엔 바쁘셨고요. 작년 야마보코 순행은 지나가면서 잠깐 본 적은 있어요.”
“그랬군요. 그럼 이 기회에 실컷 구경해두도록 하죠. 자아, 저기 보이는 큰 가마가 나기나타보코(長刀鉾)예요. 야마보코 순행 때 언제나 선두를 맡는 가마죠.”

치즈루는 집처럼 커다란 가마의 크기에 압도당했다. 하늘을 찌를 것처럼 지붕에 세운 나기나타, 붉은색에 금장식을 둘러 화려한 가마 위에는 악단들이 타고 축제 음악으로 흥을 돋우고 있었다. 선두를 장식하는 가마답게 무척 커서 가마에 매달아둔 등롱의 수도 어마어마했다. 가마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순 없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충분히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이렇게나 컸군요. 멀찍이서 봤을 땐 크기를 잘 가늠할 수 없었는데.”
“당일에는 아이들을 태운다고 하더군요. 치즈루도 타보고 싶어요?”
“전 아이가 아니잖아요.”

치즈루가 샐쭉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이바가 놀라 변명했다.

“당신을 아이 취급한 게 아닙니다. 요이야마 땐 가마에 타보는 것도 가능하니까, 모처럼 기회니까 한 번 해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물론 이런 차림이면, 어린애 같아 보이긴 하지만……”
“치즈루!”

이바가 황급히 치즈루의 손을 잡았다. 치즈루가 이바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식은땀 까지 흘리며 당황한 기색이었다.

“전 당신을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믿어주세요.”

얼마나 간절한지. 절박한 눈빛에 치즈루가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해버려서 도리어 이면의 마음을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이바 씨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치고 있는 걸까?’하고.

“어릴 때 당신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단 한 명의 소녀였지만, 지금은 달라.”

무슨 말이 나오려는지 감이 잡히진 않았지만, 치즈루는 너무나 진지한 이바를 어쩐지 말려야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저기, 이바 씨!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요. 낮에 야마자키 씨가 수상하다고 말했던 가게가 있어요.”

그 말에 이바가 정신을 차렸다. 손을 놓고 한 발자국 물러나는 그의 귀가 새빨개졌다.

“미안합니다! 곤란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아뇨. 저야말로 괜한 소릴 했어요.”

어색하게 사과하고 서있으려니, 인파가 몰려들어 금방 거리가 번잡해졌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밀리게 될 지경에 이르자 이바는 주저하다 말했다.

“손, 잡고 걸어요. 떨어져서 미아가 돼버려도 곤란하니까.”

이바가 내민 손을 치즈루가 잡았다. 이바는 조금 앞서서 사람들에게 치즈루가 행여 치이지 않도록 길을 만들며 걸었다. 누구의 손이 그다지도 뜨거운지 모를 만큼 맞잡은 손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치즈루는 과거의 기억을 돌이켰다. 희고, 가냘프고, 보드라웠던 하치로 오빠의 손. 크고, 단단하고, 뼈마디가 잘 느껴지는 이바 씨의 손. 다른데도 분명 거기서 느끼는 감정은 이상하게도 다르지 않았다. 이바의 깊은 배려와, 안도감. 이 손을 잡고 있으면 어디까지고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신비한 고조.

“가보고 싶단 가게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 분명 좀 더 걸어가면 나올 거예요. 술을 파는 가게였어요.”

이바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걸었다. 덕분에 치즈루는 전야의 풍경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달 장식을 걸고 생동감 넘치는 화초 그림으로 꾸민 츠키호코(月鉾), 웅장한 황금빛 익조를 뱃머리에 장식하고 강렬한 여러 색채를 두른 후네호코(船鉾). 이바는 가마를 발견할 때 마다 가마에 얽힌 이야기며 전설을 아는 한도에서 설명해 주었다. 가마 주변에는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粽:치마키)을 팔거나 나눠주었고, 이색적인 모습에 치즈루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이바가 웃으며 넌지시 물었다.

“치즈루도 가지고 싶나요? 저걸 문 앞에 걸어두면 재난이 피해간다더군요.”
“하나 정도는요. 하지만 사람이 저렇게 많아서야 받는 것도 일이겠어요.”
“방금 지나온 가마들은 워낙 인기니까요. 조금 더 들어가면 아직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은 가마도 있을 겁니다. 거기서 받도록 해요.”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저도 액막이로 하나쯤 받아갈까 하던 참이니까요. 아, 저기 콩떡을 파는 데가 있네요.”

음식을 파는 점포를 발견하자 이바는 신이 나 걸음을 옮겼다. 대나무 잎에 싼 콩떡을 두 개 사서 하나는 치즈루에게 주었다. 저녁도 먹지 않고 나왔다는 걸 뒤늦게 상기하자 급격히 배가 고파졌다. 치즈루가 감사를 전하고, 하얀 찰떡에 검은 콩이 박힌 떡을 한입 베어 물었다. 쫀득하고 알알이 박힌 콩이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좋았고, 달작지근하면서 고소한 맛이 입에 퍼지는 느낌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맛있어요.”
“그렇죠? 평범한 음식이라도 이런데서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져요.”
“이바 씨는 정말 맛있는 걸 좋아하시네요. 미식가세요.”
“미식가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식도락이 좋을 뿐이에요. 이렇게 맛있는 걸 먹으면 곧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신기한 음식도 많이 드셔보셨을 것 같아요.”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서양의 음식을 가끔 먹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카스테이라도 그렇지만-”

이바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산들바람처럼 간지러워서 치즈루는 마냥 이야기를 듣는 만으로도 즐거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 사람은 어느덧 카모강변 근처까지 걸었다.
카모강의 다리 위에서 악사 한 명이 절륜한 솜씨로 피리를 불고 있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음색에 취했다. 이바와 치즈루도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연주를 들었다. 처음에는 축제음악을 연주하는가 싶더니, 관중들이 어느 정도 모여들자 곧 통속적이고 애수에 찬 곡을 피로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음악을 들은 게 언제 적 일이었는지. 치즈루는 시간을 헤아리다 포기했다. 교토에 온 이후부터 마음의 여유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다. 에도에서 아버지와 함께 오붓하게 지냈던 시간이 마치 꿈이 아니었나 싶을 만큼, 지나치게 강렬한 현실 속에서 그저 발버둥 치기에 급급했다.
치즈루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무척 슬프지만 아름다운 곡이에요.”
“아마도 연정의 노래가 아닐까요?”

치즈루가 이바를 돌아보았다. 이바는 애틋한 시선으로 연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속의 음악은 잘 모릅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과 이야기는 연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수긍하면서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라, 치즈루는 이바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편안하고 행복한 얼굴이었다. 눈을 감고 가락에 흥을 싣는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서로 어깨를 기대어 유난히 다정하게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았다. 때문에 치즈루는 자신의 어깨에 맞닿아있는 이바의 존재를 보다 크게 느꼈다.

‘히지카타 씨가 그런 말을 해버리니까.’

공연히 의식하게 돼버린다.

‘내가 이바 씨에게 어울릴 리 없는데.’

이바가 내게 잘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소꿉친구이니까. 언제나처럼 생각했을 때였다.

‘어라?’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심장이 콱 조이는 것 같은 아픔이 달렸다. 당연한 일을 생각했을 뿐인데 크게 상심해 버렸다. 어째서? 몸의 반응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 괴물.

그 순간, 타케다의 차가운 목소리를 떠올렸다. 흡, 하고 숨을 크게 삼켰다. 손에 힘이 들어가 옷깃을 꽉 쥐었다. 그 말을 얼마 전 이 카모 강에서 들었다.

- 너는 오니다, 유키무라 치즈루. 인간이 아니야.

카자마의 낮게 깔린 무서운 목소리도 떠올랐다. 치즈루는 치미는 감정의 격류를 억지로 눌러 삼키고 동요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바가 행여 눈치챌까봐 평온을 가장했다. 그러나 무의미했던 것 같다. 이바는 아주 찰나의 순간 치즈루의 떨림을 눈치 채고, 떨어져 있던 손을 다시금 잡아주었다.

“괜찮아요.”

어째서 그에게는 통하지 않은 걸까? 억울한 기분이 들 만큼 간파당하고 말았다. 귓가에 이바의 목소리가 느릿하게 감겨들었다.

“세상 모두가 당신을 매도해도, 저는 알고 있어요. 평범한 소녀인 당신을.”
“이바 씨……”
“그러니 무서워하지 마세요. 행여 지금처럼 무서워지는 순간이 온다면 제 말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사람은 어디까지 상냥해질 수 있는 걸까? 치즈루는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따스하고 편안한 요람에 잠긴 것 같았다. 이바의 말에는 강요도, 강제도 없다. 자애로움이 가득한 언어는 치즈루의 주변을 공기처럼 떠다니다, 외로움을 느낄 때 포근하게 다가와 품어주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과분하리만큼 큰 애정을 주고 있었다.

공포는 이미 씻겨 사라졌다. 악사의 연주가 끝나고, 다리를 쉰 두 사람은 다시 또 걸었다.

“저기 한산한 가마가 있어요.”

치즈루가 멀지 않은 거리에 놓인 단아한 가마를 가리켰다. 매화꽃 그림과 장식으로 치장한, 화사하면서도 어딘지 사랑스러운 느낌의 가마였다. 근처에서 무녀 복장을 한 여자가 오가는 사람들에게 부적을 나눠주고 있었다. 저기라면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치즈루가 다가가려 했을 때, 이바가 발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렸다.

“왜 그러세요?”
“저 가마는……”

이바가 시선을 내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치즈루가 의아해하며 이바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스마사야마(保昌山)라고 불리는 가마입니다. 헤이안 시대의 시인인 이즈미 시키부와 남편 후지와라노 야스마사 친왕의 고사를 묘사했고요. 저 곳에서 주는 부적은, 그러니까.”
“뭔가 위험한 건가요?”
“아뇨. ……입니다.”
“네? 잘 안 들렸어요.”

이바는 머쓱하게 손으로 뒷목을 만졌다.

“결혼부적입니다.”
“……”

치즈루는 순식간에 이바의 당혹을 이해하고, 자신도 머리끝까지 열이 오르고 말았다.

“여, 역시 그 가게를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 그렇죠. 그 가게를 가본다고 했었죠.”

어색하게 웃으며 두 사람은 말없이, 빠른 걸음으로 야스마사야마를 벗어났다. 그러니까, 히지카타 씨, 토시 씨가 쓸 데 없는 말을 한 탓이라며 같은 인물을 향해 원망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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