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앵귀/이바x치즈루] 하계열(夏季熱) - 4 글과 그림

[박앵귀/이바x치즈루] 하계열(夏季熱) - 3

4.

다음 날, 어제와 비슷한 시간대에 이바가 찾아왔다. 히지카타는 콘도와 함께 용무가 있어 자리를 비운 참이어서, 마침 일어난 산난이 대신 이바와 치즈루의 상담에 응해주었다.

“인원의 문제도 있으니 아무래도 모든 가마에 신경 쓰기란 사실상 어렵겠지요. 그저 치기라면 좋겠습니다만, 연정에 눈 먼 사내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번 건은 덫을 만드는 편이 좋겠습니다. 사냥감을 덫으로 몰아넣어 보지요.”

산난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이 감을 잡지 못하는 눈치이자, 산난은 안경을 고쳐 쓰고 고소를 지었다.

“상식적으로 야마보코 전야, 사람들 숫자가 최고조로 달한 거리에서 대놓고 소동을 피우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범인이라도 분명 한적하고 침입이 쉬운 가마를 노리겠지요?”
“가마 하나를 의도적으로 비우자는 말씀이십니까?”

이바가 의중을 깨달아 물었다.

“비운다는 말은 어폐가 있군요. 경계를 느슨하게 해도 될 것입니다. 중요한 가마는 전야 사람들을 태우지 못하도록 하고, 일부 가마에는 경비를 세워두면 되겠지요. 그 중 하나 둘을 골라 허술하게 놔두면 아주 높은 확률로 그리 가지 않겠습니까. 연모하는 자에게 확고한 의지까지 전달해 버렸으니 물릴 수도 없을 테고.”

산난은 차갑고 비릿한 비웃음을 지었다. 피부가 찌릿할 만큼 냉정한 기운에 치즈루와 이바가 긴장해 아무 말도 못하자, 산난 쪽이 감정을 거두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제 요이야마에서 어떤 가마가 가장 한산했습니까?”
“저희가 본 것 중에서는 야스마사야마였습니다. 그 가마만이 카모강 인근에 있어서 다른 가마보다 좀 떨어져 있었습니다.”
“마침 결혼과 연분을 의미하는 가마라면 합이 맞군요. 방침은 히지카타 군과 오후 순찰조에게 전달하고, 축제 진행자들에게 연통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어제처럼 요이야마 순찰을 해주세요. 당일에는 평범한 부부처럼 행동하면서 가마 근처를 감시하면 될 겁니다.”

치즈루는 산난 씨마저 그러지 말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상대는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다. 거기에 일일이 반응하는 자신이 우스운 꼴이지 않은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치즈루가 솟구치는 부끄러움을 참고 태연한 척 하자, 산난이 어라, 하고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유키무라 군은 이바 군과 부부처럼 행동해도 태연할 만큼 익숙해졌나 보군요.”
“아, 아뇨. 절대로, 아니에요.”

어수룩한 생각을 후회했다. 누굴 속여 넘긴단 말인가? 치즈루는 결국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키득거리는 산난을 이바가 곤혹스러워 말렸다.

“산난 씨, 치즈루를 너무 놀리지 말아주세요.”
“전부가 놀림은 아닙니다만. 뭐, 괜찮겠지요. 어쨌든 이 일의 해결을 수락한 건 두 사람이고, 신선조는 전면으로 도와줄 만큼 여력이 없습니다. 모처럼의 마츠리를 망치면 안 되니 잘 해 보십시오.”

두 사람이 산난의 도움에 감사를 전했다.
그 길로 두 번째 날은 평범하게 기온 거리를 돌아다니며 수상한 사람이 없나 살펴보는 데 주력했다. 치즈루는 특히 열심이어서, 이바가 뭔가 먹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물어도 사양했다. 어제의 오붓한 시간이 거짓말 같아 이바는 섭섭함을 금할 길 없었다. 그럼에도 치즈루와 함께 있는 시간은 기쁘고 행복했다.
중간에서 만난 오후 순찰조도 아직은 별 문제가 없다며 스쳐 지나갔다.

“오래 걸었어요. 조금 쉬지 않겠어요?”

치즈루는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고집 피우지 않고 쉬어가기로 했다. 어제 옷을 갈아입었던 찻집에 들르자 주인이 알아보고 차와 양갱을 내주었다. 오센이 이야기를 해 두었는지 대금은 받지 않겠다고 일러주었다.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여 마른 목을 축이고 기력을 채웠다.
머잖아 발을 걷고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오는 목소리에 이바와 치즈루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메 군이 잠자코 있으니까 미키 녀석, 기고만장해선 귀찮은 일은 이쪽에다 다 맡겨버리잖아.”
“거리의 치안은 중요한 사안이다. 지금 같은 축제 기간에는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신경 써야 해.”
“정말 하지메 군은 쓸데없이 성실하다니까. 하여간 좀 쉬다 가자고.”

투덜거리는 목소리도, 고지식하고 담담한 목소리도, 이바와 치즈루에겐 그립고 반가웠다. 치즈루가 저도 모르게 그들을 부르려다 곧 어두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헤이스케와 사이토도 실내를 둘러보다 상황을 깨닫고서 우뚝 멈춰 섰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고, 헤이스케가 왁 소리치며 나가려고 했다.

“다른 데 가자고, 하지메 군!”
“아뇨, 잠깐만요!”

이바가 일어나 그들을 잡았다.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어, 엑? 하지만-”

헤이스케가 곤란한 표정으로 치즈루를 힐끗 보고 사이토에게 의견을 묻는 시선을 던졌다. 사이토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바와 치즈루가 앉은 곳의 칸막이 너머 자리에 앉았다.

“하치로와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아. 그렇구나. 하치로는 대사가 아니지, 참. 그럼 실례.”

이바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치즈루에게 속삭였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치즈루는 곧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됐다.

“……고맙습니다. 두 사람의 안부가 궁금해요. 잘 지내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이바가 칸막이에 등을 대고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두 분 모두 잘 지내고 계셨는지요?”
“뭐어어, 잘 지낸다면 잘 지내고 있지. 건강이라면 걱정하지 마.”

칸막이 너머에서 평온함을 가장한 헤이스케의 대답이 들려온다. 사이토에게서는 질문이 돌아왔다.

“너는 어쩐 일이지?”
“토시 씨의 부탁을 받아 거리 순찰을 돌던 중이었습니다.”
“신선조의 오후 순찰이 평소보다 늦은 감이 있던데, 그와 관련한 일인가.”

이바가 사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모두 듣고 헤이스케가 넌더리를 냈다.

“꼭 그렇게 제정신 아닌 녀석들이 있다니까.”
“우리가 순찰을 나와서 다행이군. 알겠다. 이쪽에서도 불온한 행동을 하는 자가 있다면 손을 돕도록 하지. 전달할 말이 생기면 이 찻집 주인에게 맡겨두겠다.”
“고맙습니다. 사이토 군, 헤이스케 군. 치, 센가쿠(千鶴의 음독) 씨도 무척 고마워 할 것입니다.”

이바가 순간 기지를 발휘했고, 칸막이 너머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치즈루가 조마조마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이바가 괜히 말했나 후회가 들 무렵, 헤이스케의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그, 치즈, 아, 아니. 센가쿠 씨도 잘 지내고 있대? 거, 왜, 우리가 그 사람한텐 신세를 많이 졌으니까 말이야. 종종 걱정이 들더라고.”

치즈루가 이바의 옷자락을 잡고 절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바가 치즈루를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쁨을 담아 대답했다.

“물론이죠.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십니다. 센가쿠 씨도 두 분을 언제나 걱정하고 있었어요.”
“전달해주게. 다른 사람들보다도 자신을 먼저 생각하라고. 센가쿠 씨는 잔걱정이 많으니까.”
“하치로가 있으니까 괜찮겠겠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전해줘.”

사이토와 헤이스케는 신선조에 있을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려 깊고 다정했다. 두 사람이 거기까지 말하고 슬슬 움직여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직접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함께 있는 모습을 양쪽 진영 누군가에게라도 보인다면 좋을 일이 없었다.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에 치즈루가 말없이 몸을 깊게 숙여 인사했다.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을 이바는 눈치 챘지만, 이번만큼은 달래주려 손을 뻗지 않았다.
치즈루의 등과 어깨가 그러길 바라지 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사적으로 친밀함 이전에, 지금껏 함께 살아가며 뜻을 함께하고 동참했던 동료를 향한 마음일 것이다. 이바는 관여할 수 없는 신선조 사람들만의 이야기였다.

밤 중 까지 별 일 없이 순찰이 끝나고 이바가 치즈루를 데려다 주었다. 찻집 이후 두 사람은 별 대화를 하지 않았다. 치즈루는 치즈루 대로, 이바는 이바 대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자신의 심경을 헤아리는 데 급급하여 상대를 신경 쓰지 못한 탓이었다. 돌아올 무렵에는 안정이 되었으나, 미안함 때문에 어색해져버렸다.
이대로 둔소로 돌아가 버리면 내일 이바를 볼 낯이 부끄러워질 거라 생각한 치즈루가 짐짓 태연하게 운을 뗐다.

“결국 그 가게를 못 갔네요. 어제 말씀드린 그 술파는 가게요.”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내일은 꼭 가보도록 해요.”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바 씨 덕택에 헤이스케 군과 사이토 씨가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아서 기뻤어요.”
“저야 말을 전달했을 뿐이에요. 제 역할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기쁠 따름입니다. 또, 여러분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어요.”
“무엇이요?”

바람이 불어 거리에 자라난 느티나무의 소리통을 울렸다. 이바가 발을 멈추고 바스락거리는 잎사귀를 응시했다. 치즈루가 이바가 보는 것을 함께 바라보았다. 밤 노래의 가락처럼 이바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무와 함께 노래하는 것 같았다.

“제 입장과 역할 자체에 회의를 가진 적은 없습니다. 막신으로써 제대로 이 길을 나아가고 있는지 초조함을 느낄 때는 있지만요. 하지만 이 길은 처음부터 내가 만들어 온 길은 아니야.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왔기에 그저 받았을 뿐입니다. 때문에 토시 씨와 신선조 사람들이 지금껏 개척한 길과 의지를 쭉 동경해 왔습니다. 비록 길은 갈라졌어도, 헤이스케 군이나 사이토 군 또한 자신이 믿고 나아갈 길을 선택했어요. 이제껏 함께 해 온 동료들에게 등을 돌리면서까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또 그들과 함께 해온 당신도.”
“이바 씨도 자신의 길을 선택하셨잖아요?”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너무 자신을 낮추실 필욘 없다고 생각해요. 신선조가 아니니까, 이바 씨가 하타모토이고 근위대에 계시니까 할 수 있는 일도 분명 있어요. 제가 저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처럼.”

치즈루의 말이 이바의 가슴 속에 스며들어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이렇게 이해하고 용기를 건네주는 사람 앞에서 칼부림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칼은 사람의 목숨을 앗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진정 강한 마음을 가진 상대를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이 사람에게는 평생 이기지 못한다. 이바는 그 사실을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자신이 실력을 아무리 갈고 닦더라도, 치즈루가 가진 강한 마음에는 결코 빗댈 수 없으리라.

“이바 씨?”

치즈루가 웃으며 이바의 이름을 불렀다. 이바는 대답 대신 바랐다.

“내일 별 일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치즈루와 평화로운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렇네요. 모처럼의 축제니까요. 사람들의 즐거움을 빼앗게 둘 순 없죠.”

그리고 치즈루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말을 했다. 이바는 웃음이 터졌고, 치즈루는 돌연 웃는 이바의 모습을 의아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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