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앵귀/이바x치즈루] 앵무새 글과 그림

- 엔딩 이후 시점
- 스텔라 꽃의 장 특전 책자 내용 이후


앵무새


이바가 에도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꺼내고 떠난 지 닷새였다. 그가 에도에 가려는 목적을 알고 치즈루는 굳이 함께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이바는 에조치에서의 결말 이후 치즈루가 눈을 뜨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 정리해야할 모든 일을 미뤘다.
두 사람은 바로 얼마 전에야 야세 마을에 들른 참이었다. 타케다에게서 회수한 오른쪽 오니의 팔을 반납하고 센히메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바는 인세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며 치즈루와 살아가기로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이바 하치로’라는 인간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이번 에도행의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일전에 몸을 숨겨 지내던 요코하마의 통역가의 집을 잠시간의 거점으로 삼고 치즈루는 이바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고작 닷새가 지났을 뿐인데 몹시도 마음이 허전했다. 이 집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이전, 교토 신선조 둔소에서 지냈을 때가 문득 생각이 났다. 1년에 이바를 만날 수 있던 날은 단 며칠에 불과했다. 아무리 이바에 대한 마음을 자각하지 못했을 때라지만 어떻게 그 시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낼 수 있었는지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쩜 이렇게나 이상하고, 이기적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치즈루가 꾸벅꾸벅 졸았다. 오랫동안 병상에 있었던 탓에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야세의 마을로 가는 일도 이바는 좀 더 건강을 추스른 뒤 가자며 만류했지만, 치즈루가 부득불 고집을 부렸다. 더 이상 이바가 그의 일을 자신 때문에 미루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루.”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살며시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자 이미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치즈루가 놀라 크게 뜬 눈으로 고개를 드니, 그리운 사람이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대로 이불에 누워있지 그랬어요.”
“하치로 씨? 언제……”
“방금 돌아왔습니다. 밖에서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놀랐어요. 상태가 안 좋나요?”

크고 따듯한 손이 차가워진 치즈루의 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치즈루는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하치로 씨를 기다리다 지루해서 그만 졸아버렸어요.”
“미안해요. 좀 더 일찍 돌아오려고 했는데, 예상보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잘 다녀오셨어요? 모토야마 씨의 가족들은 뭐라고 하셨어요?”

이바가 에도에 다녀온 이유. 이바 하치로가 ‘정리해야만 하는 일’. 둘도 없는 친우의 최후를 자신의 입으로 전하고, 그가 남긴 유품을 가족에게 전해주는 것이었다. 치즈루가 조심스레 묻자, 이바는 복잡함을 담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죽은 줄 알았던 제가 나타나니 처음엔 혼비백산했지만, 사정을 설명하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 전달해주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모토야마는 에도를 떠날 때 이미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것을 각오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겁 많고 유약한 모토야마가 그처럼 용감하게 싸우고 최후를 맞이했다는 사실을 대견스럽게 여겼다. ‘살아남은 사람이 가장 괴로운 것’이라며 모토야마의 가족들은 침통함을 숨기지 못하는 이바를 도리어 위로했다.
치즈루가 이바의 왼손을 잡아주었다. 이제는 보통 사람의 손과 거의 다르지 않은, 그가 지금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 원인이 된 손이었다. 말로 전달하기 힘든 감정을 두 사람은 서로의 손길로 충분히 헤아리고 이해했다.

구국, 이상한 소리가 들려 치즈루가 소리의 방향을 찾았다. 이바는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일어나 방 문 너머에서 뭔가를 가지고 들어왔다. 감싼 천을 거두자 아치형의 서양식 새장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빨간색 날개와 꽁지깃을 드리운 커다란 새 한 마리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묘한 소리로 울고 있었다.

“모토야마가 에도를 떠나기 전에, 혹시라도 제가 오게 된다면 꼭 주라고 맡겨둔 새라고 해요.”
“앵무새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머리가 좋아서 사람이 하는 말을 곧잘 따라한다고 해요. 데리고 오는 도중에 뭔가 말하는 낌새는 없었지만요.”

어째서 새일까? 그것도 이렇게 커다란 새를. 치즈루가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바는 품에서 서찰 한통을 꺼내 치즈루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당신에게 남긴 편지입니다.”
“모토야마 씨가 제게요? 하치로 씨가 아니라요?”
“예에. 이 새 외엔 제게 따로 남긴 건 없었습니다.”

도무지 모토야마의 의도가 이해되질 않아, 치즈루는 바로 편지를 뜯어 읽어보았다. 편지에는 그리 길지 않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단숨에 읽고서 혼란스러운 눈으로 편지와 앵무새, 그리고 이바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라고 적혀있나요? 제가 알아도 되는 내용인가요?”
“그게-”

편지를 보여줘야 할지 고민하다, 치즈루는 일단 편지에 적힌 대로 해보기로 했다.

“치히로, 이바 씨의 비밀이 뭐야?”

그러자 앵무새가 고개를 휙 들더니 구국구국 뭔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해요! 치즈루!”

새가 말하자 두 사람이 깜짝 놀라 물러났다. 앵무새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나서 목청 높여 떠들었다.

“보고 싶어요, 치즈루! 좋아해요, 치즈루!”

앵무새의 노래는 치즈루에 대한 그리움과 고백으로 가득 차, 멍하니 보고 있던 치즈루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바는 사색이 돼서 허둥지둥 당황하다 천으로 다시 새장을 덮어버렸다. 그러자 앵무새는 반항하듯이 더 보고 싶고 좋아하는 치즈루를 외쳐댔다.

“아, 아니, 치즈루! 그, 읏, 모, 모토야마!”

이바는 뭐라 변명도 못하다가 모토야마의 이름을 부르짖고선 새장을 끌어안았다. 앵무새가 말하기를 멈추고 다시 구국거리며 울음소리만 냈다.
새장을 안은 어깨와 등이 떨리고 있었다.
치즈루가 팔을 뻗어 이바의 등을 안았다.
함께 울었다.

* * * * *

[ 유키무라 씨에게.

그 새의 이름은 치히로라고 해. 혹시 받게 된다면 이바의 앞에서 ‘치히로, 이바 씨의 비밀이 뭐야?’라고 물어봐줘. 반드시 이바 앞에서야. 그 녀석, 숫기가 없어서 분명 제대로 말 못했을 테니까. 이런 일은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된다니까. 앞으로도 이바를 잘 부탁해! ]


20170705 RALL
박앵귀 ~진개~ 꽃의 장
소재 : Pia(@Neduck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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