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앵귀/이바x치즈루]단잠(熟睡) - 1 글과 그림

- 꽃의 장 메이지 2년 3월 시점

단잠(熟睡)



1.

그는 ‘오늘은 어쩐지 피가 술렁이는 것 같다’라고 지나가듯 말했다. 치즈루는 그 말을 허투루 넘겨듣지 않았다.

이르게 시작하는 아침, 업무로 바쁜 오후, 전선에서 활동을 금제한 이바는 치즈루와 함께 다른 방법으로 모두를 도왔다. 병사들의 훈련과 오릉곽으로 몰려드는 서류의 정리, 유격대 대장의 보조와 민간 지원 등, 칼로 싸우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은 도처에 쌓여있었다.
나찰이 된 후 낮 시간 활동이 이바의 몸에 주는 부담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에도에 있을 때보다도 몸을 사리지 않고 지냈다. 그것이 자신의 책임인 양, 함께 싸울 수 없음에 대한 속죄인 양. 치즈루는 이바의 마음을 헤아렸다.

“하치로. 오늘은 이만 됐다.”

군량 증축 관련으로 서류 작성을 보조하던 이바에게 히지카타가 말했다. 불그스름한 석양의 색깔이 방 안을 물들일 무렵이었다. 이바가 고개를 갸웃하며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일거리를 돌아보았다. 히지카타는 미간을 찡그리고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거리며 축객했다.

“며칠 째 내내 낮 시간에 일하고 있잖아. 나찰이 된 주제에 그렇게 움직이다간 금방 골로 갈 거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짓도 적당히 하라고. 일찌감치 들어가 좀 쉬도록 해. 내일은 늦게 나와도 되니까.”
“그렇게까지 무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시끄러워. 나찰이 된 부하들에 대해선 지긋지긋할 만큼 잘 알고 있다고. 그리고 너, 생각해야 할 사람을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

이바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깜박이다가 아, 하고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치즈루가 걱정하고 있었군요.”
“그래. 걱정을 얼굴에서 감출 생각을 못 할 정도로. 그러니 오늘은 이만 물러가.”
“알겠습니다.”

이바는 순순히 서류를 내려놓고 깍듯하게 히지카타에게 인사한 뒤 집무실을 나왔다. 치즈루는 언제나 자신을 배려해주었다. 그 배려에 마음을 맡긴 주제에 이번에는 정도가 조금 지나쳤던 모양이다. 그간의 무리를 인식하고 긴장을 풀자 뒤늦게 피로가 몰려들었다. 팔 다리가 무겁고 눈가가 욱신거렸다. 몸 안쪽 어딘가부터 기분 나쁜 감각이 울렁거렸다.

‘위험한데.’

좋지 않은 전조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헐적으로 느꼈던 피의 술렁거림이 이제는 확실히 느껴질 만큼 커졌다. 이바는 지금의 상태가 무엇을 불러일으킬지 깨닫고 서둘러 방으로 돌아갔다.
비틀거리며 몸을 죄는 옷과 크라바트를 벗고 침대에 기절하듯 쓰러졌다. 곧 식은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술렁거림이 요동으로 바뀌었다. 이바는 시트를 쥐고, 허억, 숨을 삼켰다. 나찰의 피가 살가죽을 찢고 튀어나올 것처럼 날뛰었다. 어마어마한 허기와 갈증에 뇌까지 타버릴 것 같았다. 고통을 참으려 몸을 웅크렸다. 행여나 이성을 잃고 방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비틀어 안았다.
피에 대한 갈망에 미친 짐승이나 다름없다. 몇 번이나 겪은 발작이었지만, 도무지 이 감각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어서 빨리 피를 취하라고, 사람들 베고 찢어 그 피를 빨며 향락에 취하라고, 더 이상 괴롭지 말라고 미쳐버린 본능이 끝없이 이성을 공격했다.

“이바 씨!”

고통을 참느라 방에 누가 들어온 줄도 몰랐다. 어느새 다가온 치즈루가 이바의 어깨에 손을 댔다. 달콤한 살 냄새가 났다. 하얀 피부 아래에 숨겨진 감미로운 피의 향기에 이성이 송두리째 날아갈 것 같았다.

“어서 제 피를 마시세요.”
“치즈루……”

엉망진창으로 앗아버리고픈 욕망을 억누르고, 이바가 팔을 뻗어 치즈루를 쓰러트렸다. 뒤에서 덮듯이 끌어안아, 옷깃을 끌어내려 드러난 하얀 목덜미에 상처를 냈다. 흘러내리는 선혈에 차가운 입술을 가져다 대자, 치즈루 몸이 살며시 떨렸다. 이바의 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치즈루의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마시는 일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어도 여전히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차차 발작이 잦아들었다. 하얗게 샜던 머리카락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안광이 얼핏 비치던 붉은 눈도 맑은 날의 하늘빛으로 돌아왔다. 미안해요, 치즈루. 한숨처럼 속삭인 이바가 치즈루를 풀어주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치즈루는 엎드린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치즈루? 왜 그래요?”

이바가 사색이 돼서 치즈루의 상태를 살폈다. 목덜미의 상처는 이미 사라졌다. 혹시 지나치게 피를 빨아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이 아닌지 덜컥 두려웠다.

“읏, 아,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잠시만……”
치즈루가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바가 걱정에 질려 치즈루의 등을 다독였다.

“괜찮습니까?”
“죄송해요. 그……”
“제가 무리를 시켰군요.”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치즈루가 튕겨나듯 몸을 일으켜 이바를 올려다보았다. 귀까지 새빨개진 얼굴로 항변하듯이 뭔가를 말하려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니……까……”
“치즈루, 왜 그렇게-”
“부, 부끄러워서……! 왠지는, 저도 잘, 모르겠……”

치즈루는 왠지 오늘쯤, 이바에게 발작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바가 아침에 불쑥 한 말이 전조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내내 걱정을 지우지 못했다. 아까도 히지카타의 일을 돕는 이바의 상태를 보러 갔다가 쉬러 돌려보냈다기에 서둘러 찾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바가 발작을 혼자 견디고 있었다. 놀랐고, 속상했다. 계속 곁에 있어주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좀 더 자신의 감을 믿었어야 했다.
언제나처럼 피를 나눠주었을 뿐인데, 이바의 포옹도 목덜미에 닿는 입술과 혀의 감촉도 분명 몇 번이나 느꼈던 것인데. 치즈루는 그 감각이 전과 달리 너무나 간지럽고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예전에는 어떻게 이런 감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싫은 기분을 느끼게 해서 미안해요.”

이바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치즈루의 상태를 이해한 것 같았다. 이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경고가 치즈루의 뇌리를 스쳤다. 치즈루가 황급히 이바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그의 품에 묻었다.

“싫지 않아요.”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상한 말을 한다고 생각할까봐 초조했다.

“너무 이바 씨가 잘 느껴져서, 부끄러워졌어요.”
“네…… 네?!”
“모, 몰라요!”

치즈루가 이바를 밀치고 도망치려했지만, 이바가 반사적으로 힘을 주어 끌어안는 바람에 실패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제법 오랜 시간 정지해 있었다. 서로의 빠른 고동소리와, 따듯한 체온 덕분에 마음속에 채워져 있던 어떤 문이 스르르 열렸다.

석양이 지고 어스름이 내려, 불빛 없는 방안에 부드러운 연보라색이 번졌다. 두 사람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마주보았다. 눈빛과 호흡에 사랑스러움이 가득해 빨려들 듯 가까워졌다. 코끝이 닿고, 이마가 닿고, 이바의 입술이 치즈루의 볼에 닿았다가 그녀의 숨결을 쫓아 입술에 닿았다. 말로 수습할 수 없던 기분이 신기하게도, 이렇게 입술을 맞대고 있으면 모두 이해되고 진정됐다.
잠시 뒤 입술이 살며시 떨어졌다.

“같이 잘래요?”

이바가 물었다. 치즈루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종종 함께 잠들곤 했다. 누구 한 사람이 불안하거나 힘들 때, 혹은 둘 모두 그러할 때, 함께 차가운 밤을 보내는 일은 크나큰 위로였다. 서로를 안고 잠들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다. 불안도, 슬픔도, 기약 없는 미래도, 죽음의 예감도 그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이바 씨, 역시 너무 무리했어요.”

치즈루가 이바의 머리를 품어 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걱정 끼칠 생각은 아니었어요. 조심하겠습니다.”

영원할 것 같은 겨울이 끝을 고하고 있었다. 이바는 치즈루에게 봄이 되면 일어날 일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조만간 평온했던 나날에도 작별을 고해야할 때가 온다고. 눈이 녹고 한파가 가시면 신정부군은 에조치로 본격적인 정벌을 시작한다. 에조치의 혹독한 겨울보다도 더 가혹한 전쟁이 또다시 시작된다. 날이 풀려 햇살에 봄기운이 스며들며, 안도감과 그보다 큰 불안의 향기를 두 사람은 매일같이 느끼고 있었다. 이바가 부쩍 무리하게 된 것도 불안에 대한 반동이었으리라.
이바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치즈루의 열린 셔츠 틈으로 따듯한 숨결이 들어와 살에 닿았다.

“……아.”

약하게 떨며 반응하는 몸짓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바가 치즈루의 앞섶을 열고 쇄골에 입 맞추었다. 이바의 머리를 안은 치즈루의 팔이 긴장했다가 풀리길 반복했다.

“이바 씨……”
“응, 치즈루.”

가느다랗게 서로의 이름을 속삭이며, 서로의 목과 어깨와 등을 만지고 쓰다듬었다. 숨결과 입술이 얽히고 온기를 나눈다. 잠겨드는 것처럼 나른함을 동반한 몸짓이었다. 옷깃이 흘러내려 살과 살이 장벽 없이 닿는 느낌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요람 같았다.
그렇게 서로를 인지한다. 사랑한다. 함께 잠든다.
다다를 곳은 다른 꿈이더라도, 현실에서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안고서.

덧글

  • 에리카 2018/04/03 20:09 # 답글

    으아니이이이이 다된밥이이이이이이이ㅣㅣㅣㅣㅣㅣㅣㅣㅣ너무하시네에엨ㅋㅋㅋㅋㅋㅋ
  • 랄원영 2018/04/05 16:50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떡 안쳐요!!!
  • 2018/08/05 12:4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랄원영 2018/09/30 20:50 #

    앗 답글 감사합니다 이제봤네욬ㅋㅋㅋㅋㅋㅋ
    종종 그리고 쓰고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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